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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임수와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

김왕식








배산임수와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을 삶의 중요한 지침으로 여겼다.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며, 집터 하나를 정할 때도 '배산임수背山臨水'라는 원칙에 충실했다.
뒤로는 산을 두르고 앞으로는 물을 마주한 땅, 즉 안정성과 풍요를 모두 갖춘 공간이 가장 좋은 자리로 여겨졌다. 고려 시대의 서경 천도西京遷都론이나 조선의 한양 도읍지 선정이 모두 이를 뒷받침한다.
현대에도 그 명맥은 이어져, 서울 남산 아래 이태원과 한남동은 여전히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름난 기업인과 연예인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고자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쯤에서 흥미로운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좋은 땅, 가장 명당이라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건 정작 학교, 군부대, 사찰 같은 공공시설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땅에 거주하려는 욕망은 결국 현실에서 좌절되고, 대신 그곳은 ‘공익’을 명목으로 한 기관이나 집단이 차지하는 게 우리 사회의 묘한 풍경이 된다. 어쩌면 이는 우리 삶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아이러니를 상징하는지도 모른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과연 공공의 이름으로 세워진 이 시설들이 진정으로 '공익'을 실현하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 학교는 과열된 경쟁과 입시 스트레스를 양산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고, 군부대는 여전히 폐쇄적 문화 속에서 고통을 이야기하는 병사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 곳이다. 사찰 역시 돈과 권력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그 명당을 차지한 이들이 정말 그곳을 가치 있게 쓰고 있는지, 진정 그 땅이 말하는 조화와 안정을 구현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이유다.

한편, 대통령실이 청와대를 떠나 한남동으로 이전한 것도 이런 풍수적 관점에서 보면 흥미로운 논제로 떠오른다. 표면적으로는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청와대를 떠났다고 하지만, 정말로 배산임수에 더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한 무의식적 결정은 아니었을까?
남산의 품을 안고 한강을 마주한 한남동은 분명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힌다. 그런데 그곳이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을 때 과연 국민의 삶은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 풍수지리로만 보면 대통령실의 이전은 성공적이라 할지 몰라도, 그 결정의 이면에는 국민이 얼마나 고려되었는지 의문이 든다.

결국, 풍수지리라는 전통적 사고는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정을 추구하는 지혜를 주었지만,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공익과 사익의 경계를 뒤섞으며 복잡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땅을 차지하려는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공공의 이름으로 그것을 점유한 이들이 얼마나 공익을 실현하고 있는지, 혹은 그 자리에 적합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냉철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장 명당에 사는 이들이 모두 행복한 것도 아니며, 가장 좋은 땅을 가진 이들이 반드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이자 해결해야 할 숙제다. 풍수지리가 우리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 지혜를 개인의 욕망을 넘어 더 큰 공동체의 안정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가장 좋은 자리들에 군부대가, 학교가, 사찰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풍수적 이유만이 아니라, 그 자리가 가진 상징성과 권력을 대변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차지한 이들이 정말로 공공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그 땅의 주인을 누가 결정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결정에 얼마나 동의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명당을 차지한 이들이 자신의 자리가 가진 무게와 책임을 진정으로 깨닫는 날, 우리 사회의 배산임수는 비로소 풍수의 가르침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 명당이 권력과 탐욕의 상징이 아니라, 진정한 조화와 풍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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