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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장터, 축제의 서사

김왕식






단어의 장터, 축제의 서사
ㅡ축제의 글, 삶의 5일장처럼





문학평론가 김왕식






글이 축제와 같아야 한다는 *미하일 바흐찐의 사상은 글쓰기의 본질을 새롭게 조명한다.
축제란 무엇인가? 그것은 삶의 경계와 구분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웃고, 울고, 때로는 격렬히 토론하는 장이자, 세상의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변모하는 공간이다. 바흐찐의 주장에 따르면 글 또한 그러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창작자의 내면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독자와 소통하며 함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는 장이 되어야 한다.

시골 5일장의 풍경이 그러하다. 그곳에서는 삶의 엄숙함이 배제된다. 시장에 들어선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걱정과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생동감 넘치는 대화와 거래 속으로 뛰어든다. 장터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삶의 축약본이다.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 기대와 좌절이 섞이며 새로운 관계와 서사가 만들어진다.

글은 이러한 시골 장터와 같아야 한다.

독자가 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들은 단순히 작가가 준비한 엄숙한 강연을 듣는 존재가 아니다. 독자는 그 글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협력자가 된다. 작가가 펼쳐놓은 단어의 장터에서 독자는 각자 원하는 감정과 생각을 사고, 팔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글은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쌍방향적 소통의 장이 되어야 한다.

바흐찐이 말한 축제적 글쓰기는 고립된 정적(靜的) 상태를 거부한다. 이는 글쓰기를 향한 새로운 태도를 요구한다. 글은 독자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거나 정서를 강요하지 않는다. 외려 글은 독자가 주체가 되어 그 안에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엄숙함 속에서 경직된 텍스트는 독자의 참여를 제한한다. 반면 떠들썩한 5일장의 분위기를 닮은 글은 독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그 의미를 완성시킨다.

장터에서 가장 매력적인 장면 중 하나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서로의 삶을 엿보고, 흥정을 벌이며, 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농담을 나누는 그 순간들. 이러한 모습은 글쓰기에서도 유효하다. 글이 독자의 삶을 반영하고, 그들에게 친숙한 언어로 말을 걸 때, 독자는 글과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그것은 삶의 복잡함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글은 그 자체로 장터의 복잡다단한 풍경을 담아야 한다. 서로 다른 목소리, 다양한 이야기,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이 글을 축제로 만든다.

축제적 글쓰기는 단순히 화려하거나 감각적인 표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흐찐의 논의는 글의 본질적 역할을 성찰하게 한다. 그것은 삶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가 함께 어우러진 총체적 경험이다. 축제는 단순히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로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글도 그러해야 한다. 독자에게 다양한 삶의 면면을 보여주고, 그들 스스로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해야 한다.

축제와 같은 글은 단절이 아닌 연결을 지향한다. 시골 5일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작가와 독자, 독자와 독자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큰 서사를 만들어가는 장이어야 한다. 글을 읽고 나서 독자는 그 내용을 통해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고, 그 대화는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진다.

결국, 바흐찐이 말한 축제적 글쓰기는 단지 문학적 기술을 넘어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 글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호흡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마치 시골 5일장의 소란스러움과 생동감처럼, 글은 삶의 복잡함을 담아내며 사람들의 마음에 여운을 남겨야 한다. 이러한 글이야말로 진정으로 축제가 될 수 있다.


*
미하일 바흐찐
Mikhail Bakhtin
철학자, 문학평론가
출생
1895.11.17. 러시아
사망
1975.03.07.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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