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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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이불속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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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은 세상이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오기 전, 온 세상이 숨을 죽인 듯 고요하고 적막하다. 이 시간은 무척 소중하다. 모든 소음이 사라진 채, 온전히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때로는 글을 쓰기도 한다. 따뜻한 홍차 한 잔의 온기가 손끝에서 느껴질 때면 새벽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완벽한 고요 속에서도 유일하게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시계의 초침 소리다. 낮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미세한 소리가 새벽의 적막 속에서는 유난히 선명하게 들린다. 초침이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 리듬이 묘하게 신경을 자극한다. 마치 적막을 깨는 불청객처럼 느껴져, 초침 소리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들으니, 과거 고시생들은 초침 소리에 신경 쓰여 시계를 이불속에 묻어 두곤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한 번쯤 따라 해볼까 싶다가도,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스며든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초침 소리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집중력을 잃는 자신이 못내 아쉽다. 진정 고수는 시장통 같은 소란스러운 곳에서도 내면의 고요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데, 작은 소음 하나에도 동요하니 아직 멀었다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든다.
새벽의 고요는 특별하지만, 동시에 시험의 시간이기도 하다.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면, 오히려 내 안의 불안감과 산만함이 또렷이 드러난다. 마치 투명하게 보이는 거울처럼, 새벽의 적막 속에서 마음의 민낯을 마주한다. 초침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은 내면의 평온을 이루지 못한 흔적이다.
삶은 종종 깨닫게 한다. 외부의 소음이 아니라, 그것에 반응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사실을. 고요 속에서조차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고요한 환경에 있어도 진정한 고요는 손에 닿지 않는다. 새벽녘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초침 소리는 어쩌면 자신을 돌아보라는 작은 알림일지도 모른다.
새벽의 초침 소리를 견디기로 했다. 그것이 아무리 귀찮게 해도, 마음을 다잡는 연습이 될 것이라 믿으며. 진정한 고요는 바깥이 아닌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새벽은 속삭이고 있었다. 언젠가 시장통의 소음 속에서도 고요를 찾아낼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새벽의 적막 속 초침 소리는 여전히 또렷하지만, 그 소리와 함께 마음을 단련해 가고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