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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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보콘, 시골길 위의 작은 기적
정용애
저 멀리 신작로 산모퉁이에서 빵빵~빵 울리는 경적 소리가 들렸다. 금성여객 시골버스의 기적소리는 읍내 5일장, 면소재지 6일장에 갈 사람들, 그리고 육지로 떠날 이들에게 어서 나오라는 신호였다.
해남을 지나 강진에 사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왼편에는 바다, 오른편에는 푸른 산이 펼쳐진 신작로가 흙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육지로 이어졌다. 한참을 달렸을까. 드디어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를 지나가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며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바다가 육지라면 얼마나 좋을까.”
차창 너머 펼쳐진 넓디넓은 들판. 그 위에 초록빛으로 물든 잎사귀들이 춤을 추었다. 버스가 휭하니 지나가며 불러일으킨 바람 속에서 마음속 질문이 새어 나왔다.
“이건 논 아니여? 겁나게 넓은 논에 나락이 저렇게 많아 불까. 누구네 것일까?”
부러운 마음에 혼잣말을 삼켰다.
“우리 논도 저기에 있으면 겁나게 좋을 건디. 쌀밥이라도 실컷 먹어 봤으면...”
눈앞에 펼쳐진 상상의 밥상. 큰 놋그릇에 수북이 쌓인 하얀 쌀밥이 침샘을 자극했다. 그렇게 한참을 꿈꾸다 보니, 어느새 강진에 도착해 있었다. 언니가 두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짧은 시내 구경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직행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언니가 과자와 빵, 그리고 생전 처음 보는 부라보콘을 사주었다.
“오메, 이게 뭐여? 꼭 나팔같이 생겼는디...”
“이거 먹는 거여, 아니면 가지고 노는 거여?”
“근디 왜 이렇게 차가운 거여?”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둥근 부분을 입에 대 보았다. 헌디 크기가 너무 커 입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래쪽은 길쭉하고 뾰족했다. 조심스럽게 한 번 더 시도했지만, 입을 콕 찌르는 바람에 성질이 나버렸다. 결국 손에서 놓아 버리고 말았다.
며칠 뒤, 읍내에서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부라보콘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았다. 아주머니는 둥근 부분부터 맛있게 먹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치듯 깨달았다. 얼른 하나를 사서 먹어 보았다.
“앗따! 이게 그 맛이었구먼!”
단단했던 아이스크림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 그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두 개를 더 사서 아버지와 어머니께 가져다 드렸다. 부모님도 처음 보는 아이스크림에 놀라며 말씀하셨다.
“이게 뭐여? 차갑고 단단했는디, 이젠 말랑말랑 해져부렀네.”
결국 식구 모두가 웃고 울며, 그릇에 담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그 맛은 처음의 설렘과 놀라움, 그리고 가족의 행복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
흙먼지 날리던 신작로, 바다가 육지가 되는 다리, 그리고 처음 맛본 부라보콘. 그 모든 순간이 시골길 위의 작은 기적처럼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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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라보콘, 시골길 위의 작은 기적'을 읽고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어릴 적 첫 부라보콘을 만났던 날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선생님처럼 저 역시 아이스크림이 주는 신기한 차가움과 단맛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글 속에 담긴 생생한 묘사는 그 시절 순수했던 마음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 사투리로 전해지는 정감 어린 말투가 마치 제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빵빵 울리던 금성여객 시골버스의 소리가 선명히 그려졌습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신작로와 그 양옆에 펼쳐진 푸른 산과 바다의 풍경은 어쩐지 저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비록 그 길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선생님의 글 덕분에 그 공간 속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다가 육지라면”을 흥얼거리던 대목에서는 가슴이 찡했습니다. 섬마을 아이들이 육지로 향하며 느꼈을 설렘과 동경, 그리고 부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푸른 들판을 바라보며 “우리 논도 저기 있으면...” 하던 속마음은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저도 어린 시절, 넉넉한 이웃의 밥상이 부러워 “우리 집에도 저렇게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 부라보콘! 세상 처음 만난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만지작거리던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요. 둥근 부분을 입에 넣으려다 실패하고, 성질이 나서 차 바닥에 던져버렸다는 대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 맛본 첫 부라보콘의 그 맛! 단단함이 부드럽게 녹아드는 신비로움과 달콤함은 선생님의 표현처럼 정말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황홀함이었을 것입니다.
가족에게 두 개를 더 사서 가져다 드렸다는 이야기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낯선 부라보콘을 보고 신기해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웃고 떠들며 먹던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이 갑니다. 단순한 아이스크림 하나가 단순히 맛을 넘어 가족 간의 정과 웃음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단순한 추억의 이야기를 넘어, 그 시절의 풍경과 정서를 온전히 담아낸 한 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흙먼지 날리던 신작로, 바다가 육지가 되는 다리, 그리고 부라보콘이 연결한 가족의 웃음은 읽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는 모두 자신의 기억 속 소중한 추억 하나를 떠올렸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