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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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이라고 생각해 봐
화장실 문화는 그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창과 같다. 가장 사적이고도 공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의 인격과 배려가 무심코 드러난다.
"쉽지 않다"는 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유다. 특히 공중 화장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수많은 이들이 스쳐 가는 공간이기에, 그 안에서는 다양한 문화와 습관, 그리고 무책임함까지 엿볼 수 있다.
오늘 대학병원의 화장실에 들렀다. 복잡한 사람들 속에서 한적한 순간을 찾기 위해 들어간 그곳에서 문득 시선이 머문 것은 화장실 이용 안내 문구였다. “우리 집 화장실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짧은 한 문장이었다. 그 문구는 묘하게 따뜻하면서도 서늘한 울림을 주었다. 처음에는 마치 내게 안심하라는 듯한, 혹은 화장실을 더 아늑하고 친근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다정함처럼 느껴졌다. 그 말속에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단순한 위로를 넘어서 사용자의 책임감과 배려를 촉구하는, 한층 더 깊이 있는 서늘함이었다.
‘우리 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깨끗함, 애정, 그리고 존중이다. 우리 집 화장실은 누구나 자연스레 아끼고 잘 사용하려는 마음이 든다. 그러나 공중 화장실에서는 그 마음이 쉽게 흐려진다.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는 이유로, 혹은 누군가 나 대신 관리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우리는 종종 무책임해진다.
이 문구는 그러한 무책임함에 대하여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 모두가 공중 화장실을 ‘우리 집 화장실’처럼 여긴다면 어떨까?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은 그저 화장실 관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감을 상기시키는 강력한 교훈이었다.
그 따뜻한 듯 서늘한 문구를 곰곰이 곱씹어 보았다. ‘우리 집’이란 말은 나에게만 머물지 않고 타인과의 연결성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사용하는 공간이 다른 누군가의 다음 공간이 되고, 내가 남긴 흔적이 누군가의 경험을 좌우한다. 이것은 단순히 화장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공공의 모든 공간에서 적용될 수 있는, 혹은 적용되어야만 하는 삶의 철학과도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 문구는 우리가 속한 사회적 관계와 책임을 환기시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이 문구는 단순히 이상적인 메시지로만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배려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마다 사용하는 습관이 다르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마음은 항상 뒤로 밀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 화장실처럼 생각하라"는 말은 단순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도전과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도전이야말로 더 나은 문화를 형성하는 데에 필수적인 출발점임을 알아야 한다.
특히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이러한 문구를 만났다는 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병원은 생명과 건강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의 삶과 죽음, 고통과 회복이 동시에 머무는 곳에서 화장실은 단순한 신체적 필요를 넘어 심리적 안식처의 역할도 한다. 그러한 공간에서 던져진 “우리 집처럼”이라는 메시지는 단순한 안내를 넘어 마음을 환기시키는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단순히 깨끗이 사용하라는 청소 안내 이상의, 인간적인 배려와 공감에 대한 요청이다.
결국 화장실은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그 안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연결성을 발견할 수 있다.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은 단순히 관리자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용자가 모두 공감과 책임을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 병원 화장실의 작은 문구는 이러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은 우리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공간을 대하는 태도를 재정립하게 한다. 또한, 우리 주변의 공간들이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던져준다.
이 문구의 서늘한 울림은 단순히 화장실 안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 속 공간, 관계, 나아가 삶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우리 집’이라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단지 화장실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에서 더 따뜻하고 배려 깊은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작은 문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한 문장 속에 담긴 거대한 가르침이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돌아보게 하며, 배려와 존중이 있는 사회를 향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게 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