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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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가 아닌 상대의 세상
어느 날, 은행에 갔다. 서류를 작성해 창구 직원에게 건네니,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반대쪽도 쓰셔야 해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의 다른 면을 작성해 다시 건넸다. 일을 마치고 문 쪽으로 향하니 안내 직원이 친절히 말했다.
“나가시는 문은 저쪽 반대편입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답하며 문을 향하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선(善)과 악(惡)만 진정한 반대고, 나머지는 모두 상대인데... 세상은 선과 악도 상대라 부르고, 나머지는 반대라고 부르네.”
그 순간, 창구 직원이 내 말을 들었는지 웃으며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잠시 한산한 틈을 타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여자의 반대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남자죠.”
“그럼 낮의 반대말은요?” 내가 다시 물었다.
옆에서 듣던 다른 직원이 끼어들며 말했다.
“밤 아닐까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설명했다.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반대가 아니라 상대예요. 남녀의 몸과 마음은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구조입니다. 낮과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립하는 반대가 아니라, 서로를 채워주는 상대인 거죠.”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정말 그러네요.”
내 설명은 이어졌다.
“세상을 반대로 보는 건 공산주의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공산주의는 모든 것을 반대 개념으로 설명해 투쟁과 혁명을 정당화하지요.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지만, 언어나 사고방식에서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그런데 왜 그걸 미처 몰랐을까요?”
“교육의 영향이 크지요. 세상의 많은 것은 반대가 아닌 상대입니다.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하늘과 땅, 물과 불까지도 모두 상대적인 관계로 존재합니다.”
조용히 듣던 직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선과 악만 반대인가요?”
“그렇습니다. 본래 세상에는 선만 있어야 했어요. 악이 존재하기 전에는 선과 악을 나눌 필요도 없었지요. 그러나 악이 생기면서 선을 구별하고 지키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으로는 반대라는 말 대신 상대라는 말을 써야겠어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맞아요. 사랑도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혼자서는 사랑할 수 없지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입니다. 남편에게 아내가, 부모에게 자식이 상대가 되듯, 서로가 있어야 관계가 존재합니다. 상대적인 관계에서만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가능하지요. 반대하거나 대립하는 관계에서는 사랑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때 창구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대화를 마치며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직원이 나가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들어오는 문이 있으면 나가는 문도 있지요. 그것 또한 상대입니다.”
밖으로 나오며 세상을 돌아보았다. 지금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는 반대와 상대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 아닐까.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대립과 반대를 논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일이다.
가던 길에서 발걸음을 멈추며 생각했다.
“잘난 사람보다 따뜻한 사람이 좋은 세상, 가진 것이 많은 사람보다 나누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