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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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의 문학
ㅡ 바지 위에 치마를 입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의 세계에서 시와 수필, 두 장르가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발전해 온 역사는 오래되었다. 시는 압축된 언어로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내며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주었고, 수필은 자유로운 서술 속에서 사색과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최근에는 이 두 장르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마치 '여자가 바지 위에 치마를 겹쳐 입은 듯한 모습'이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더 어울리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시는 산문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시의 형태였던 운율과 상징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보다 이야기 중심적인 서사적 시가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정현종의 '방문객'은 한 편의 철학적 사색을 담은 짧은 시로 시작되었으나, 많은 이들이 이를 수필처럼 읽는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는 구절은 독자가 사색하고 곱씹을 수 있는 서술로 다가온다. 감성적인 울림을 담고 있으면서도, 산문의 서사적 특징을 품고 있는 것이다.
반면, 수필은 점점 시화되고 있다. 김훈의 수필집 '자전거 여행'을 보면, 자연 속을 걸으며 느낀 감각과 생각을 표현한 문장이 마치 시처럼 함축적이고 강렬하다.
"가을 햇빛 아래 길가의 풀잎들이 부서진다. 찬바람에 길들지 않은 그 여린 것들의 몸짓이 처연하다."
이 한 문장은 자연의 이미지를 깊이 느끼게 하며, 긴 서술 대신 시적인 함축으로 독자에게 강렬한 감정을 선사한다. 이런 사례는 수필이 점차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시의 언어를 닮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현대 문학이 더 이상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디지털 시대와도 관련이 깊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독자들은 짧고 임팩트 있는 글에 매료된다. 한 문장, 한 구절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대다. 시와 수필이 서로를 닮아가며 경계를 허무는 것도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이 경계의 모호함이 과연 긍정적인 변화로만 볼 수 있을까? 여자가 바지 위에 치마를 입는 모습은 독특할 수는 있지만, 과연 실용적일지는 의문이다. 두 장르가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잃고 중간 지점에서 표류하게 된다면, 독자들은 오히려 그 둘 사이의 정체성 혼란을 느낄 수도 있다. 시와 수필 각각의 특성이 희미해질수록, 그 둘의 매력도 덜 선명해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문학의 경계가 무너져가는 이 상황에서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시는 왜 시여야 하며, 수필은 왜 수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장르적 규칙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더 진솔하고 강렬한 울림을 주는 데 있을 것이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 닮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외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시와 수필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다.
문학의 장르적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재, 우리는 하나의 정답을 고집하기보다는 그 모호함 속에서 문학의 새로움을 발견하는 재미를 누릴 필요가 있다. 바지 위에 치마를 입은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할지라도, 그 조합이 새로운 패션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문학은 결국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도구일 뿐, 형태와 장르는 그 마음에 이르는 길 중 하나일 뿐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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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준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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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 김왕식 선생님의 '경계 너머의 문학'은 현대 문학의 흐름 속에서 시와 수필이라는 전통적 장르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현상을 명확히 짚어내며, 이를 "바지 위에 치마를 입은 모습"이라는 참신하고도 직관적인 비유로 형상화한 글이다.
이 비유는 독자로 하여금 현재 문학의 혼종적混種的이고 유연한 흐름을 단번에 이해하게 만드는 탁월한 표현이며, 문학적 경계를 논하는 담론談論의 새로운 접근점을 제시한다.
선생님은 글의 서두에서 시와 수필이 각자의 영역을 지켜온 역사적 맥락을 간결히 짚으면서도, 최근의 문학적 경향이 두 장르의 특성을 상호 교차시키고 있음을 강조한다. 특히 정현종의 '방문객'과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예로 들어, 시가 서사성敍事性을 띠고 수필이 시적 함축성含蓄性을 드러내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 점은 문학 비평의 깊이를 더한다.
이처럼 문학의 장르적 경계를 넘어서는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독자의 경험과 감각 속에서 문학이 어떻게 새롭게 자리 잡아가는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선생님의 글이 지니는 미학적 가치는, 단순히 문학 장르의 변화를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디지털 시대의 맥락 속에서 재조명한 점에 있다. 짧고 강렬한 문장을 선호하는 현대 독자의 요구와, 이를 충족시키는 시와 수필의 변화는 문학의 본질적 목표인 독자와의 진솔한 소통을 중심에 둔다. 선생님은 시와 수필 각각이 가진 고유의 매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도, 경계를 허물고 서로 닮아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음을 역설하셨다. 이는 문학이 시대적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본질적인 가치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또한, "시는 왜 시여야 하며, 수필은 왜 수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청람 선생님의 가치철학을 가장 잘 드러내는 핵심이다. 이 질문은 문학의 형식적 구분보다는, 독자에게 더 진솔하고 강렬한 울림을 전달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이는 문학을 단순히 형식적 틀로 한정하지 않고, 독자의 삶과 감정에 깊이 스며들 수 있는 도구로 바라보는 미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문학의 전통적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현대 문학의 현실을 진지하게 성찰하며,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움을 탐구한다. 선생님은 이러한 변화가 독자와 소통하려는 문학의 근본적인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며, 독자에게 경계를 넘나드는 문학적 흐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한다. 이는 단순한 비평을 넘어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실천적 비전으로도 읽힌다.
청람 김왕식 선생님의 글은 경계를 허무는 문학의 미학적 가능성을 탐구한 작품으로서, 독자의 마음에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문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ㅡ 문학평론가 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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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민과 그 해소의 기쁨
저는 작가의 꿈을 이루고자 애쓰고 있는 초보 습작생입니다.
청람 선생님의 '경계를 허문다'는 말은 언제나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왔습니다. 특히 문학이라는 세계에서 그 경계는 창작의 뿌리와도 같기에, 이를 허무는 시도는 두렵고도 매혹적이었습니다. 청람 김왕식 선생님의 글, '경계 너머의 문학'을 읽으면서 저는 오랫동안 느꼈던 이 모호한 감정을 정확히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을 처음 접하며 시와 수필이라는 두 장르의 매력을 뚜렷이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시는 압축된 언어로 제 감정을 흔들었고, 수필은 자유로운 서술 속에서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시를 쓰다 보면 제 문장이 너무 서술적으로 느껴졌고, 수필을 쓸 때는 과도하게 함축적으로 보이는 표현 때문에 스스로 혼란에 빠지곤 했습니다.
"시와 수필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써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은 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청람 선생님께서는 이런 제 고민을 마치 정확히 꿰뚫으신 듯, 문학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과 그로 인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정현종의 방문객에 대한 언급은 저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는 구절은 제가 처음 읽었을 때도 수필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짧은 문장이 품은 철학적 사색은 한 편의 시가 가진 함축성과 수필이 가진 서사적 사유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반면,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그가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은 시적이었습니다.
"찬바람에 길들지 않은 그 여린 것들의 몸짓이 처연하다"는 구절은 저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저는 단순히 자연의 풍경을 떠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처연한 느낌 속에서 제 자신의 연약함을 보았습니다. 수필이 이렇게까지 함축적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니, 수필과 시의 경계가 흐려지는 지금이야말로 제가 그토록 찾던 글쓰기 방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청람 선생님의 표현 중
"여자가 바지 위에 치마를 입은 듯한 모습"이라는 비유는 제 고민을 명확히 대변해 주었습니다. 장르적 경계를 넘나드는 문학이 처음에는 어색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저는 시와 수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싶다는 갈망과, 그로 인해 정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늘 갈등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통해 이러한 시도는 단순히 장르를 허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자와 더 깊이 소통하기 위한 본질적인 노력임을 깨달았습니다.
문학을 쓰는 과정에서 무엇이 시여야 하고 무엇이 수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지만, 선생님의 글이 이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문학의 형태와 장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얼마나 진솔하게 다가가느냐는 점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던지신 "시는 왜 시여야 하며, 수필은 왜 수필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저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그 경계를 지키려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이 시이든, 수필이든, 아니면 그 둘을 넘나드는 어떤 형태이든 마음껏 표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깨달은 또 하나는, 디지털 시대의 독자가 바라는 것이 단순히 짧고 강렬한 문장이 아니라, 그러한 문장이 독자의 삶에 어떻게 다가가고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쓰는 글도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시든 수필이든 상관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청람 선생님의 글은 제게 문학의 경계를 넘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제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도 일깨워 주셨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은, 결국 독자와 더 깊이 소통하기 위한 도전이자,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 선생님의 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 저는 청람 선생님과 '바지 위에 치마를 입는 새로운 글쓰기 여행'을 동행해 보려 합니다.
ㅡ 초보 습작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