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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해, 두 가지 맛

김왕식








두 번의 해, 두 가지 맛







한국은 참 특별하다.

한 해가 시작되고 또 한 해가 다시 열린다. 한국에서는 신정과 구정, 두 번의 새해를 맞이한다. 1월 1일의 신정은 세계와 함께 새해를 축하하는 날이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폭죽 소리가 밤하늘을 채우고, "해피 뉴 이어!"라는 외침이 울려 퍼진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진짜 명절의 온기는 구정, 음력설에 있다.


신정은 어딘가 가볍다.

현대적인 새해를 기념하는 날이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그냥 하루의 휴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TV에서는 연말 시상식과 특선 영화가 줄지어 나오고, 사람들은 집에서 조용히 하루를 보내거나 친구들과 간단히 만난다. 새해 목표를 세우며 다이어트를 결심하거나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런 의지는 겨울바람처럼 금세 사라지곤 한다. 신정은 차분한 새해의 첫걸음 같은 날이다.


구정은 다르다.

구정이 다가오면 동네 곳곳에서 명절 음식 냄새가 풍겨온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전을 부치고, 할머니는 정성껏 떡국을 끓인다. "떡국 한 그릇 먹고 나면 한 살 더 먹는 거야!"라는 말이 가족들 사이에 웃음처럼 번진다. 삼촌과 이모들은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며 흐뭇해하고, 아이들은 봉투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는다. 어쩌면 민감한 질문이 오갈 수도 있다.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같은 말들이 잠깐의 긴장을 만들지만, 이런 사소한 불편함마저도 구정이 주는 추억의 일부다.


구정의 백미는 고향으로 가는 길에 있다. 고속도로는 차들로 가득 차 있고, 라디오에서는 “현재 서해안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되었습니다!”라는 익숙한 멘트가 흘러나온다. 뒷좌석에서 졸던 아이들은 어머니의 간식을 받아 들며 잠결에 깨어난다. 차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때로는 웃음꽃을 피우고, 때로는 지난 세월의 추억을 꺼내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한다. 차창 너머 스쳐가는 겨울 들판은 정겹고, 가끔은 새하얀 눈으로 덮여 명절 분위기를 더한다.


구정은 단순히 연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우리의 뿌리와 전통을 되새기며 가족애를 느끼는 날이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기름 냄새 가득한 부엌에서 명절 음식을 나르는 손길은 그 자체로 따스하다. 신정이 도시적인 세련미를 지녔다면, 구정은 마치 고향의 품처럼 넉넉한 마음을 안겨준다.


한국은 두 번의 새해를 맞이하며 각각 다른 맛과 향을 즐긴다. 우리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는 것은 구정이다. 명절 음식의 따뜻한 냄새와 가족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구정의 풍경, 그것이야말로 진짜 명절의 맛 아닐까?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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