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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와 작대기

김왕식








지게와 작대기





시인 강문규





너는 어찌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가느냐


빈지게는 없고
너보다 큰 짐만
지어 나르는구나

옥구슬 같은 땀 흘리며
꼴이 산더미처럼 지게에 쌓여 있다

지게가 나를 짊어지고 가는 건지
앞이 보이지 않게
무겁구나

잠시
시원한 바람 부는
능수버들 아래
지게 작대기 받치고
목이나 축이고 가야겠다
나도 힘든데
너도 잠시 쉬어가렴

지게는 작대기에 의지하고
작대기는 지게에 등지며
삶에 무게를
짊어지고 가자

무거움을 들어주고
받쳐 주고
만나지 말았어야 할
지게와 작대기의 기구한 운명이구나

너와 나의 만남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인가 보다

반질대는 작대기
손잡이 침 한 번 퉤 뱉고
다시 어깨에 지게를 매었다
좁은 논둑 콩나무 피한 걸음
기뚱 기뚱 잘도 간다
작대기는 수풀에
뱀이 있나 기척 된다

어느덧 소외양간
여물통 앞에 지게를 세우니
노을도 져물어가는
고단한 하루가
또 지나가는구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문규 시인의 「지게와 작대기」는 농사와 땀으로 이어지는 시골의 일상을 회상하며, 지게와 작대기라는 소박한 도구에 삶의 무게와 철학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한 농기구를 소재로 삼아 인간의 노동, 인내, 그리고 상호 의존의 관계를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시의 서두는 지게를 의인화하며 질문을 던진다.
“너는 어찌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가느냐”라는 물음은 단순히 지게에게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존재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는 작가가 노동과 삶을 동일시하는 철학적 시각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묘사에서는 옥구슬 같은 땀방울과 산더미 같은 꼴이 쌓인 지게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며, 노동의 고단함이 구체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작대기와 지게의 관계는 상호 의존적이다.
"지게는 작대기에 의지하고, 작대기는 지게에 등지며"라는 구절은 삶의 무게를 나누고 함께 견뎌내는 인간관계나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상징한다.
지게와 작대기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고된 운명을 함께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암시하며, 삶의 필연적 관계와 운명적 결합을 철학적으로 조명한다. 이는 시인의 미의식에서 자연과 인간, 도구와 삶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얼마나 깊이 체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의 후반부에서 지게를 세우는 모습과 해 질 녘 노을의 묘사는 하루의 고단함을 마무리하며 동시에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다짐으로 읽힌다. 이는 순환적 삶의 리듬을 담아내며, 지친 하루에도 새로운 시작을 향한 소박한 희망을 품고 있다.

강문규 시인의 작품은 어린 시절 농촌에서의 경험을 통해 단순한 사물과 풍경 속에서 삶의 철학을 발견하는 순박한 미의식을 담고 있다.
그의 시에는 과거를 단순히 그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농촌 생활의 노동과 인내가 만들어낸 삶의 본질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자연과 노동, 인간관계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하며, 시인의 작품 세계가 단순한 향수를 넘어 인생의 철학적 깊이를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지게와 작대기'는 시골의 향수와 노동의 고단함을 통해 인간 삶의 무게를 철학적으로 성찰하며, 자연과 도구,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미의식을 담아낸 걸작이다.



ㅡ 청람








강문규 시인께




시인님의 시 '지게와 작대기'를 읽으며, 잊고 지냈던 옛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 또한 지게에 볏단을 올리고 작대기로 균형을 맞추며 논둑길을 걸었습니다. 땀을 훔칠 겨를도 없이 무거운 짐을 날랐던 그때, 지게는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라 삶을 함께 짊어진 벗이었습니다. 시인님께서 노래하신 그 지게와 작대기의 모습이, 마치 내 손에 다시 잡힌 듯 느껴졌습니다.

“너는 어찌 무거운 짐을 지며 살아가느냐.”
이 물음은 지게만이 아니라, 그 지게를 짊어진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겠지요. 농사짓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어린 마음에도 지게는 무거웠고, 논둑길은 멀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쉬는 틈마다 작대기를 세우고 땀을 식히며, 그 작은 쉼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떠올려 봅니다. 시인님께서 “나도 힘든데 너도 잠시 쉬어가렴” 하신 구절에서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그 시절엔 고단함 속에서도 묵묵히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방식이었지요.

지게와 작대기의 관계를 보며, 저 또한 가족과 이웃, 혹은 세상을 함께 짊어진 존재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지게는 작대기에 의지하고, 작대기는 지게에 등지며”라는 표현은,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그대로 비춘 듯합니다. 어쩌면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지만, 결국 서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관계. 농촌의 삶도 그러했지요. 함께 지고 나르고, 힘겨울 때 기대며 견디던 날들. 시인님의 시는 단순한 농기구를 넘어서, 삶의 필연적 관계와 노동의 철학을 담아낸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또한, “기뚱 기뚱 잘도 간다”라는 대목에서는 지친 걸음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농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고된 하루를 마치고, 소외양간 앞에 지게를 내려놓을 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녁노을이 물든 들판을 보며, 내일도 같은 길을 걸을 것을 알면서도 한숨 쉬어가던 순간들.

지금은 시골을 떠나 살고 있지만,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그때의 시간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농촌의 삶은 힘들었지만, 그 속에 담긴 인내와 끈기,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단순한 아름다움은 여전히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시인님께서 그려내신 삶의 무게와 순환적 희망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바쁜 농사일 속에서도, 이렇게 따뜻한 시를 통해 우리의 기억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좋은 시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길 바랍니다.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때 지게를 짊어지고 논둑길을 걸었던 독자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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