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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독자를 위한 시 '임보선 시인의 가치 철학'

김왕식








한 명의 독자를 위한 시
– 임보선 시인의 가치 철학과 미의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원로 시인 임보선 작가는 1991년 등단한 지 20년 만에 월간 문학에서 첫 시집 '내 사랑은 350°C '를

2010년 발간했다.

시인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제 시는 100명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명이 100번 읽는 그러한 시가 되길 소망하며 시를 쓴 지 20년 만에 시집을 냈습니다.”

이 짧은 문장은 그의 삶과 시 세계를 관통하는 가치 철학과 미의식을 담고 있다. 시인은 다수의 빠른 소비보다 한 사람의 깊은 몰입을 중시한다. 이는 그의 시가 대중적인 유행이나 일회성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의 내면에 깊숙이 스며드는 것이길 바라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시 창작 과정뿐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결된다.

임보선 시인은 시를 한 순간의 감각적 향유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읽고 곱씹을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는 그의 삶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닿아 있다. 그는 시를 20년 동안 써오면서도 시집 출간을 서두르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결과보다 과정과 내면의 성숙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반영한다.

오늘날 많은 시인들이 독자들에게 빠르게 다가가기 위해 쉽고 직관적인 시를 쓰거나 감각적인 표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임보선 시인은 이러한 흐름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즉각적인 반응보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울림을 지닌 시를 지향했다. 이는 마치 세월을 견뎌낸 고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것처럼, 그의 시도 오랜 시간 동안 독자와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의 철학은 단순히 시 창작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의 삶의 방식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조급함보다는 차분한 성찰을,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깊이 있는 의미를 중시하는 태도는 그가 살아온 시간 속에 스며들어 있다. 한 권의 시집을 내기까지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의 삶이 어떻게 시와 조화를 이루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임보선 시인의 미의식은 깊이 있는 독서와 반복적인 음미를 전제로 한다. 그의 시는 감각적인 화려함이나 난해한 실험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곁에 두고 읽을 수 있는 시적 깊이를 지닌다. 이는 그의 작품이 단순히 언어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는 시를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 인간의 내면을 조명한다. 그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삶의 깊이와 시간의 결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시가 읽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기고, 한 번의 감상이 아니라 반복적인 탐색을 유도하는 이유가 된다.

또한, 임보선 시인의 미의식은 자연과 삶의 본질적인 요소들과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그의 시는 인위적인 기교나 과장된 감정보다, 자연스럽고 담담한 어조를 통해 깊은 사색을 이끈다. 이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놓치기 쉬운 것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임보선 시인은 다수의 관심을 얻는 것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는 시를 쓰고자 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빠른 소비’ 문화와는 반대되는 태도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와 자극 속에서 빠르게 반응하고 소비하는 데 익숙하지만, 정작 깊이 있게 하나의 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의 시는 이러한 흐름을 거스른다. 그의 시는 쉽게 읽히기보다 반복해서 읽을 때 비로소 의미가 깊어지는 구조를 지닌다. 이는 마치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경험과 유사하다. 한 명의 독자가 그의 시를 반복해서 읽으며 자신의 삶과 연결 짓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 자체가 시인의 궁극적인 바람일 것이다.

또한, 한 명의 독자가 100번 읽는다는 것은 단순한 반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가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독자의 삶과 맞닿아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의 시를 읽는 독자는 시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임보선 시인의 시는 화려하거나 즉각적인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이 스며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의 시가 단순히 언어의 조합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다듬어진 삶의 철학이자 미의식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를 읽는 독자는 처음에는 그 깊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읽었을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그의 시가 단순히 읽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삶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임보선 시인이 바랐던 ‘한 명의 독자가 100번 읽는 시’는 단순한 독서 행위가 아니라,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는 시인의 철학이기도 하며, 그의 시가 지닌 가장 큰 가치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한 번의 감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곁에 두고 삶과 함께하는 작품이 되고자 한다.

그렇기에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독자의 삶과 맞닿아 호흡하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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