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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의 미학 ㅡ비약과 암시의 힘

김왕식




학교에서

'현대소설론'을 학생들과 공부할 때

작성한 글이다.


몇 줄 다듬어

공유한다







멈춤의 미학
ㅡ비약과 암시의 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에서 작가는 무엇을 쓰느냐만큼 무엇을 쓰지 않느냐가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독자가 여운을 느끼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깊이 말하는 방식, 그 자체가 문학의 힘이 된다. 바로 ‘멈춤의 미학’이다. 이 미학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대표적인 예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다.

일리아드는 그리스의 전쟁 서사시이지만, 놀랍게도 가장 유명한 장면인 트로이 목마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결말을 모두 알고 있는 독자들에게, 호메로스는 의도적으로 트로이의 패망을 상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킬레스와 헥토르의 대결을 중심으로 서사를 끌어가며, 인간의 운명과 영광, 그리고 필연적인 몰락을 강조한다.

트로이가 패배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작품 속에서는 그리스의 승리보다는 트로이의 정신적 위엄이 강조된다. 헥토르는 죽음을 앞두고도 도망치지 않으며, 아킬레스와의 결전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헥토르의 시신을 향한 트로이인들의 애도와 아버지 프리아모스의 간절한 호소는, 오히려 트로이의 패배가 단순한 멸망이 아니라 숭고한 저항으로 남게 만든다. 이는 작가가 직접적으로 ‘트로이의 정신은 승리했다’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호메로스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서 멈추고, 다음 이야기를 독자들이 스스로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멈춤’이야말로 이야기의 힘을 극대화하는 요소다.

문학에서 멈춤은 단순한 생략이 아니라 독자에게 스스로 사고할 여지를 주는 장치다. 많은 위대한 작품들이 바로 이 ‘비약’과 ‘암시’의 기법을 활용해 왔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오필리아의 죽음은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녀가 물에 빠지는 과정은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호하게 남겨둔다. 이 모호성이야말로 독자로 그녀의 심리를 더 깊이 상상하게 만든다. 만약 작가가 그녀의 심리를 구구절절 설명했다면, 그 순간 작품의 긴장감은 사라졌을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현대문학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헤밍웨이는 ‘빙산 이론’을 주장하며, 글에서 직접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표면 아래 더 깊은 의미를 숨겨야 한다고 했다. 그의 단편 '흰 코끼리 같은 언덕'은 한 쌍의 남녀가 기차역에서 대화하는 장면만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일상적 대화지만, 그 대화의 밑바탕에는 여자가 임신을 했고, 남자가 낙태를 종용하는 상황이라는 암시가 깔려 있다. 직접적으로 ‘낙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대화는 더욱 강한 긴장감을 갖는다.

이는 문학에서 ‘멈춤’이 단순한 서술의 부재가 아니라, 독자의 감정을 끌어내는 강력한 장치라는 점을 보여준다.
훌륭한 문학은 독자가 참여하도록 만든다. 모든 것을 설명해 버리는 글은 독자를 수동적인 소비자로 만든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멈추는’ 글은 독자로 직접 그 의미를 완성하게 만든다.

카프카의 변신을 보자. 소설의 첫 문장은 ‘그레고르 잠자는 아침에 끔찍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으로 시작된다. 그는 왜 변했는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다. 만약 카프카가 ‘그는 어느 날 신의 저주를 받아 벌레가 되었다’라고 덧붙였다면, 이 작품은 하나의 단순한 판타지가 되었을 것이다.
카프카는 독자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인간 존재의 불안과 소외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독자는 질문하게 된다. ‘왜 하필 벌레인가?’, ‘그레고르가 진짜 변한 것인가, 아니면 가족의 시선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작품의 힘을 극대화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문학에서 ‘멈춤’을 배워야 할까? 이는 단순한 글쓰기 기법이 아니라,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작가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을 때, 독자는 생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독자와의 대화가 된다.
설명이 많을수록 감정은 약해진다. 반대로 침묵이 클수록 감정은 깊어진다. 영화에서도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괴물을 보여주는 대신, 그림자만 비치거나, 소리만 들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것이 때로는 보이는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게 되면, 그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현실과 연결된다. 일리아드가 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운명과 명예,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담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요컨대, 위대한 이야기의 힘은 멈춤에 있다
작가의 역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훌륭한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한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목마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호메로스는 독자가 스스로 트로이의 영광과 몰락을 반추하도록 만든다.

이는 현대의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모든 것을 친절히 설명해 주는 것만이 좋은 글쓰기가 아니다. 독자가 상상하고, 공감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힘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멈춤의 미학’이야말로 위대한 이야기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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