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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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멈춤의 미학을
새해 아침이다.
예년 같으면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을 것이다. 친척들의 안부를 묻고, 차례를 준비하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 하루를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명절의 소란에서 벗어나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
서재에 앉았다.
문을 닫고 책을 펼쳤다.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흘렀다. 햇살이 창가를 타고 들어와 책장 위에 고요히 내려앉았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북적일 것이다. 누군가는 시끌벅적한 식탁을 마주하고, 또 누군가는 먼 길을 떠나 가족을 만나러 가겠지. 그러나 나는 한 발짝 물러섰다. 멈춤의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책장을 넘겼다.
단어들이 차분히 가라앉아 마음에 스며들었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집중하는 동안 내 안에 고요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깊이 침잠하는 느낌이었다. 일상은 언제나 흐름을 강요한다. 시간은 재촉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았다.
10시간 남짓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문장을 읽고, 생각에 잠기고, 다시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도 모르게 깊은 산속 샘물처럼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차오르고, 오래된 기억들이 잔잔히 떠올랐다. 마치 오랫동안 묵혀둔 감정이 조용히 빛을 드러내는 듯했다.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었다. 속도를 늦추고,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불러내는 일이었다. 시간 속을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마주 보는 일이었다.
새해 첫날,
멈춤이 주는 선물을 받았다. 조용한 서재에서, 책과 글 사이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한 걸음 멈춘 곳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세상의 소란을 잠시 내려놓고 바라본 내면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