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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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빛의 숨결
장상철 화백
바람 따라
길을 나서다.
샛별이 내려와
흔들리는 풀잎새의 향기에 머문다.
먼지바람에
허허롭게 떠오르는 풍선.
뭉게구름 그림자 안에
머물던
숲의 향기는
허공을 가르고,
풍선의 땅 그림자,
그 길 위에서
춤추던
투명한 소나기는
무지개와 만난다.
허공의 빛을 덜어내니
바람이
빈자리를 채워준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니
그림자가
그 자리에 머문다.
빛과 바람이
기대어 숨을 쉰다.
이 벅찬 호흡에
가슴 뛰는
오늘이 다가온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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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철 화백의 이 글은 바람, 빛, 그림자, 향기, 무지개 등의 자연 요소를 통해 삶과 시간의 흐름을 조용히 관조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흔들리는 풀잎새의 향기에서 시작해 먼지바람, 허공을 가르는 풍선과 소나기, 그리고 빛과 바람이 숨 쉬는 순간까지— 이 모든 이미지들은 유한한 존재 속에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는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투병 중에도 장 화백은 흔들림 없이 자연을 바라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그 안에서 ‘머문다’, ‘춤춘다’, ‘기대어 숨 쉰다’와 같은 행위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는 태도이다. 이는 단순한 관찰자의 시선을 넘어, 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흐름에 동화되는 깊은 정신적 교감을 보여준다. 삶과 예술, 그리고 자연이 하나의 리듬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의 글에서 돋보이는 것은 대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적인 태도다. ‘허공의 빛을 덜어내니 바람이 빈자리를 채워준다’라는 표현은 물질적인 세계의 결핍이 또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는 자연의 조화를 보여준다. 마치 한 점의 붓터치가 완성되면 자연스럽게 여백이 남고, 그 여백이 또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는 그의 회화적 감각과 깊은 철학이 결합된 결과로 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의 정서적 안정감이다. 흔히 병상에서의 글은 고통이나 회한을 동반하지만, 이 글에서는 불안과 슬픔보다 차분한 수용과 기대가 느껴진다. ‘벅찬 호흡에 가슴 뛰는 오늘이 다가온다’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삶을 떠나가는 자가 아니라, 매 순간을 온전히 살고 있는 자로 남는다. 이는 단순한 감상적 서정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체득한 깊은 정신의 힘일 것이다.
장 화백은 평생 그림과 음악,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다듬고, 세계와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의 글은 그 과정에서 다져진 미의식과 인생철학이 스며든 결과물이다. 그는 자연을 통해 삶을 바라보고, 존재의 순간순간을 정교한 감각으로 담아낸다. 예술가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깊이 있는 내면세계가 이 짧은 글 안에 압축되어 있다.
투병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시선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라 평생 예술을 통해 길러온 고요한 힘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까지도 ‘가슴 뛰는 오늘’을 기대하게 만든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