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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과 마주 앉아

김왕식







고독과 마주 앉아




고독은 마치 겨울밤 들판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와 같다.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도, 하얀 눈이 가지를 무겁게 눌러도,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 우리는 종종 그 나무를 외로움이라 착각하지만, 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삶의 모습이다.

해 질 녘, 잿빛 하늘 아래 마른나무 가지에 희끗희끗한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바람이 살짝 흔들어 놓으면, 그것들은 조용히 흩어져 어딘가로 사라졌다.
창가에 앉아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 안은 고요했다. 오직 손끝을 감싸는 따뜻한 찻잔 하나만이 온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이 순간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적막함? 외로움? 아니면, 그 너머에 있는 어떤 깊은 평온함?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고독을 두려워하며 멀리하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 삶에 처음부터 함께해 온 존재라는 것을.

고독과 마주 앉는다. 손을 내밀어 조용히 보듬는다. 그것은 어둡고 서늘한 그림자가 아니라, 우리를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존재다. 바쁜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는 얼마나 자주 대화하는가. 고독은 우리에게 그런 시간을 마련해 준다.

이따금, 침묵 속에서 마음이 묻는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날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길을 잃어버리는가. 고독은 그런 우리를 잠시 멈추게 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처럼, 숨겨진 감정들이 천천히 드러난다. 애써 외면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오래전 묻어둔 꿈들이 다시 속삭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고독을 피하려 하지만, 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진솔한 나를 만나게 해주는 길이다. 조용한 방 안에서 찻잔을 들고 천천히 숨을 고르는 순간, 나는 알게 된다. 고독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삶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을.

바람이 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손끝에 머물던 찻잔의 온기가 서서히 식어간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이제 그것이 쓸쓸하게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바람도, 저 나무도, 그리고 고독도, 우리를 더 넓고 깊은 곳으로 이끄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밤, 고독이 찾아온다면 조용히 맞이하자. 문 앞에 세워두지 말고, 그를 안으로 들여보자.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고, 천천히 대화를 나누자. 그 순간, 고독은 더 이상 낯설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우리를 길어 올리는 우물 같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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