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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벤치에서

김왕식







고즈넉한 벤치에서






고즈넉한 공원 한 켠,
오래된 나무 벤치가 놓여 있다. 계절이 바뀌어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누군가를 기다린다. 때로는 아무도 앉지 않고 비워져 있을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 자리는 ‘누군가’의 자리다. 벤치는 말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사연을 담아 간직한다.

벤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앉는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온기를 느낀다. 말없이 손을 맞잡은 채 지나온 시간을 되새기는 그들에게 벤치는 또 하나의 추억이 된다. 젊을 때는 바쁘게 살아가느라 벤치에 앉아 쉴 겨를도 없었겠지만, 이제는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벤치는 그런 그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따스한 오후를 함께 보낸다.

때로는 지친 중년이 벤치에 앉는다. 세상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어깨가 축 처진 남자가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고 한숨을 내쉰다.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나간다. 가족을 위한 책임감, 직장에서의 갈등,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고민들.

허나 벤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받아준다. 벤치에 기대어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그는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마치 벤치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하다.

벤치는 또한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준다. 가녀린 숙녀가 작은 강아지를 옆에 두고 벤치에 앉아 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강아지와 함께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세상 속 작은 섬 같다. 그녀는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다. 벤치가 있고, 강아지가 있다. 그 순간, 그녀는 누구보다도 평온하다.

이 벤치는 누구와도 친구가 된다. 사람의 나이, 신분, 감정에 상관없이 그들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함께한다. 벤치는 세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사람들에게 쉴 공간을 제공한다.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진 그 벤치는 어쩌면 한때는 울창한 숲의 일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쉬어 갈 수 있는 자리가 되어 있다. 누군가를 위해 기다리고, 받아들이고, 또 떠나보낸다.

이 벤치를 통해 우리는 관계를 배운다. 벤치는 묵묵히 사람을 기다린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도, 떠나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앉을 수도 있고, 때로는 혼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그 벤치는 우리가 기대고 쉴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때로는 벤치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감정을 받아들이며 조용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도, 단지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다. 그 벤치가 그러하듯이.

고즈넉한 자리,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벤치는 삶의 흐름을 묵묵히 지켜본다. 노부부가 떠나고,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숙녀가 강아지를 데리고 떠나도, 벤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새로운 사람이 와서

앉는다.

그 자리에서,

벤치는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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