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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야, 나는 니보다 소가 더 중하다

김왕식






가시나야, 나는 니보다 소가 더 중하다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농촌에서는 한 마리의 소가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기계화가 되지 않은 시절, 밭을 갈고 수레를 끄는 힘을 지닌 소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그래서 소를 돌보는 일은 가족 구성원에게 최우선의 과제였다.

그 시절, 자식을 많이 낳았던 이유도 노동력 때문이었다. 부모가 들에 나가 일을 하면 집안일과 동생 돌보기는 자연스레 형제들의 몫이 되었다. 큰딸,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로 어린 나이에 부모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복순이도 그랬다.
부모님이 들에 나가 계시는 동안 그는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도맡았다. 학교를 다니는 것도, 숙제를 하는 것도 사치였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동생들을 씻기고 재우고, 틈틈이 소죽을 끓였다. 소가 굶으면 안 되었다. 소가 약해지면 농사에 큰 지장이 생기고, 그것은 곧 가족의 생존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너무 피곤했던 복순이는 쇠죽을 제대로 끓이지 못했다. 들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화를 냈다.

"이 가시나야, 소가 굶는다! 나는 니보다 소가 더 중하다!"

그 말이 복순이의 가슴을 깊이 찔렀다. 이미 어린 나이에 어른처럼 살아가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이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위로받기는커녕 소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복순이는 가만히 짐을 쌌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그 집을 떠나고 싶었다. 한밤중, 낡은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시간이 흘러 복순이는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다. 자신도 자식을 키우고 가정을 꾸리며 살았다.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시절이 잊힌 듯했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어느 날, 시장에서 소고기를 사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복순이는 오래전 기억 속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하느라 손이 거칠어지고, 늘 피곤해 보였던 어머니. 고된 농사일과 아이들 돌보기에 지쳐 있던 그 얼굴.

그때야 깨달았다. 어머니도 힘들었다는 것을. 그날 소죽을 끓이지 못해 혼이 난 날, 어머니도 온종일 밭에서 땀을 흘리고 돌아왔을 것이다. 지친 몸으로 겨우 집에 들어왔는데, 소가 먹을 것이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힘들게 했을 것이다.

"나는 니보다 소가 더 중하다."

그 말이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현실적인 사람이었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복순이가 상처받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몰려나온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어머니가 없다. 그 시절을 지나왔으면서도 한 번도 묻지 못했다. "엄마, 그때 왜 그렇게 말했어?"라고. 이제는 물을 수도 없다.

그날 밤, 복순이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소가 더 귀했던 시절, 사람도, 사랑도, 너무 힘들게 버텨야 했던 그 시대를 떠올리며.




ㅡ 청람






어머니의 마음은 더 아팠다.






복순이만이 아니라 어머니 역시 큰 상처를 받았을 겁니다. 어머니는 그날 밤 복순이가 짐을 싸들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자식을 붙잡지도 못한 채, 그 뒷모습을 지켜보며 가슴이 무너져 내리지 않으셨을까요?

그 시절, 부모님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안하다"는 말도, "사랑한다"는 말도 쉽게 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음 한구석에는 분명 후회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곧 생존의 문제였던 그 시대, 먹고사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그 시절, 어머니는 그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을 뿐입니다.

복순이가 집을 떠난 뒤 어머니는 밤마다 그녀를 떠올리며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혹여나 굶지는 않을까, 추운 밤 어디에서 잠들었을까, 낯선 곳에서 무사할까. 자식을 향한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그날 했던 말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찌르지 않았을까요?

어머니는 끝내 그 말을 하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너보다 소가 더 중요하다"라는 말이 자식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알면서도, 어머니 스스로도 그 말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속으로 삼키며 살아가셨을 것입니다.

복순이가 어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도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삶이 너무 팍팍해서 감정을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습니다. 더 이상 묻지도, 용서받지도 못합니다. 복순이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존재가 살아 있습니다. 그날의 서운함도, 그날의 상처도, 결국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 글을 읽는 우리 역시 부모님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혹여 우리가 부모님께 받은 상처만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분들도 가슴속에 지울 수 없는 아픔을 품고 계셨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바랍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부모님께 한 마디라도 더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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