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50 댓글 1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백사실 계곡, 반석 위의 집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Feb 09. 2025







                                반석 위의 집




                                                      정용애






서울에서 보낸 5년은 눈물겨운 시절이었다. 힘든 날들의 끝에,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지만, 구로동에서의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모든 걸 쏟아부은 끝에, 마침내 남은 건 이십만 원뿐. 그러나 그 순간에도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마음은 감사로 가득했다.

사촌 시숙님과 형님께서 *백사실 계곡에 있는 집 한 칸과 부엌을 내주셨다. 이삿짐을 꾸려 딸들을 앞세우고, 나는 등에 이불을 메고 머리에 옷보따리를 이고 계곡길을 올라갔다. 오르막길을 10분쯤 오르니,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집채만 한 바위 위에 덩그러니 선 오두막집. 그야말로 반석 위의 집이었다.

옆으로는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큰 바위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는 발을 디딜 때마다 흔들거렸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징검다리 앞에서 머뭇거렸다.

"야, 얼른 안 건널랑가! 힘들어 죽겠는디!"
"엄마, 이거 재밌는디!"
"재밌긴 뭐가 재밌다냐, 얼른 건너와!"

결국 짐을 들고 균형을 잡아가며 겨우 징검다리를 건넜다. 비라도 오면 이 아이들 데리고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도착한 집은 열여덟 평 남짓한 작은 공간. 네 식구가 살아야 할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어 감사했다.

첫날밤, 방이 좁아 발을 쭉 뻗고 잘 수도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창밖을 바라보니, 산봉우리 너머 푸른 나뭇가지가 창문에 비쳤다.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런 방 한 칸이라도 없었으면 어찌 됐을까…’

눈을 비비고 집 주위를 돌아보았다. 수도가 없었다. 계곡물로 식수와 빨래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감사했다. 마음이 차츰 편안해졌다.

그러나 큰 걱정이 있었다. 바로 대문 밖 화장실. 밤마다 그곳을 가려면 얼마나 무섭고 힘든지 모른다. 하루 이틀 지나니 조금씩 익숙해졌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저 바위 위쪽으로 조그마한 텃밭이라도 만듭시다."
"그래야제. 양지도 좋은디, 2층 만들어서 개 하고 닭이나 키우면 어때?"
"오, 그것도 좋지라."

서로 마음을 모아 닭장과 개집을 지었다. 바둑이 두 마리, 닭 스무 마리를 사다 키우기 시작했다. 텃밭엔 고추, 상추, 호박, 오이까지 심어 놓으니 쌀만 있으면 하루 두 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더 이상 부러울 것도 없었다.

"여보, 사촌 시숙 님하고 형님한테 참 감사해야 쓰겄소."
"맞다, 덕분에 우리 이렇게라도 살 수 있잖여."

밤이면 남편과 함께 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며, 이 반석 위의 집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었다.




*백사실 계곡


백사실계곡은 자연환경과 문화사적이 잘 어우러진 우수한 자연생태 지역이다. 깊은 숲을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과 걸음을 막아서는 크고 작은 계곡의 정취가 아름답고 계곡에는 도롱뇽, 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다양한 생물체들이 서식하고 있다. 서울시 보호야생동물로서 1급수 지표종인 도롱뇽이 집단 서식하여 그 보존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문화사적으로서 조선시대부터 아름다운 경관을 갖춰 별장시설이 있던 곳임을 알리는 백석동천 각자바위가 있고 절경을 즐기기 위해 지어졌던 별서 터에는 안채와 사랑채의 터가 남아 있다. 한쪽에는 우물이었던 곳과 연못도 자리하고 있다. 백사실계곡은 서울 평창동 세검정로에서 현통사 방면으로 올라가는 방법과 자하문로에서 응선사 방면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다. 백사실계곡에서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도 둘러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용애 작가의 '반석 위의 집'은 단순한 자전적 서사로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신앙과 가족애를 중심으로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내며, 작가의 삶의 가치 철학과 미의식을 뚜렷이 보여준다.

작가는 삶의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신앙의 힘으로 모든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태도를 보여준다. 구로동에서의 경제적 실패와 서울에서의 불안정한 삶의 전환점에서도, 그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
남은 돈이 고작 이십만 원뿐인 상황에서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에 감사했다’는 구절은 작가의 신앙심이 그저 의례적 차원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가치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물질적 풍요보다 내면의 평안과 가족과의 소박한 일상을 중시한다. 수도가 없는 집, 대문 밖 화장실, 좁은 방 등 불편한 환경에서도 불평보다는 감사와 적응을 선택하는 태도는 현대인들에게 잊힌 삶의 가치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오히려 행복을 찾아가는 법을 보여준다.

정용애 작가의 미의식은 자연과의 조화로움 속에서 드러난다. 백사실 계곡으로 이주하면서 마주하는 자연의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가의 삶과 신앙, 그리고 감정이 투영되는 공간이다. '집채만 한 바위 위에 덩그러니 선 오두막집'은 단순한 서술을 넘어, 불안정한 삶 위에 서 있는 인간 존재의 상징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 바위는 곧 ‘반석 위의 집’이라는 제목처럼 흔들림 없는 믿음의 상징으로 재탄생한다.

작가는 자연을 두려움이나 낯섦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계곡물로 식수를 해결하고, 텃밭을 일구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통해 자연과의 동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징검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반응과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면서 일상적인 순간에도 서정적 아름다움을 담아낸다.

작품의 문체는 복잡한 수사를 배제하고 담백하게 흐른다. 이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더욱 강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한 대화체는 현실감을 높이며, 독자로 이야기 속으로 깊이 몰입하게 한다. 대화 속 사투리는 가족 간의 따뜻한 유대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서사의 리듬감을 조율하는 역할도 한다.

서사 구조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면서,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경제적 실패로 인한 절망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무리되는 과정은 독자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한다.

'반석 위의 집'은 고난 속에서도 신앙과 감사로 삶을 지탱해 나가는 작가의 철학이 진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물질적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과 자연,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담백한 문체와 진솔한 서사는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외적인 풍요가 아닌, 내면의 평안과 감사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고난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며, 진정한 행복이란 일상 속 감사와 신앙 안에 있다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ㅡ 청람






용애야, 잘 지내제?



오랜만에 너한테 이렇게 편지를 쓴다. 네가 쓴 반석 위의 집 읽고 나서 마음이 참 많이 울컥하더라. 서울서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우리 어릴 적 시골서 뛰놀던 그 시절만 생각했지, 네가 그렇게 눈물겨운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

네가 이불 짊어지고 옷보따리 머리에 이고 딸들 데리고 계곡길 오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오르막길 힘들게 올라가는 네 모습이 내 눈앞에 그려지더라. 서울 한복판에 그런 오두막집이 있다니, 참 신기하더라만, 그 속에서도 주님께 감사하는 너를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우리 어릴 적에도 너는 항상 긍정적이고 밝았잖냐. 어려운 일이 있어도 웃으면서 넘기던 너였는디, 그 성품은 여전하구나.

‘이십만 원 밖에 안 남았지만 주님께 감사했다’는 그 말, 참 네답다 싶더라. 나는 솔직히 그 상황이면 한숨부터 나왔을 것인디, 너는 감사부터 했구나. 계곡물로 빨래하고, 수도도 없이 지내면서도 불평 하나 없이 살아가는 네 모습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시골서 자랄 때부터 우리는 불편한 게 당연했지만, 서울 생활은 또 다르지 않냐. 그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너를 보니 내가 다 배우는 것 같더라.

네가 남편하고 바위 옆에 텃밭 일구고, 닭 키우고, 바둑이 두 마리 키우는 이야기 보면서 참 네 삶이 소박하고 따뜻하구나 싶었어. 그런 너의 삶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훈훈했다. 나도 모르게 그 시절 우리 시골집 마당에서 뛰놀던 생각이 나더라. 너는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주어진 상황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그 마음이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네 글에 그렇게 녹아 있는 것 같아.

요즘 세상은 다들 바쁘고, 가진 거에만 눈이 먼 것 같은데, 너는 반석 위의 오두막집에서도 행복을 찾더라. 그런 너를 보면서 나도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뭐가 부족해서 불평했던가, 나도 이제는 네처럼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겠다 싶더라.

용애야, 네가 꿈꾸는 그 멋진 미래, 분명히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거라 믿는다. 우리 어릴 적 시절처럼, 언제나 밝고 따뜻한 네 마음이 변치 않기를 바란다. 나도 여기서 너를 위해 기도할게. 언제 한 번 다시 만나서 옛날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구먼. 건강 잘 챙기고, 가족 모두 행복하기를 바란다.




네 소꿉친구 순자가

작가의 이전글 통조림에서 예술로 ㅡ앤디 워홀이 바꾼 시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