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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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시인 노천명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대기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를 할 수 있는 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것만으로 나는 신에게 감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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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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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의 시 '감사'는 짧고 간결한 언어로 존재의 본질적인 기쁨과 삶에 대한 감사의 태도를 담아낸다.
“저 푸른 하늘과 태양을 볼 수 있고 / 대기를 마시며 내가 자유롭게 산보를 할 수 있는 한”이라는 구절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느끼는 깊은 만족과 감동을 보여준다.
이는 시인의 삶의 가치 철학, 즉 소박함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자세와 깊은 연관이 있다.
노천명은 평생 독신으로, 고독과 맞서며 글을 썼다.
“구두를 닦는 소년의 손이 오리발처럼 얼어 결사적으로 구두를 닦듯”이라는 그의 고백은 시 창작이 단순한 감정의 발로發露가 아닌, 고통 속에서도 이어가는 의지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그 고통의 흔적은 시 ‘감사’ 속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외려 고난의 시간을 초월한 듯한 순수한 감사의 마음이, 오히려 그가 겪은 삶의 외로움과 결핍缺乏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의 대표작 ‘사슴’이 보여준 슬픔과 고독의 정서는 ‘감사’에서도 변주變奏되어 나타난다.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라는 사슴의 이미지는 고독한 존재의 슬픔을 상징하지만, ‘감사’에서는 그 고독마저도 초월한 존재의 평온함이 느껴진다.
이는 그의 시적 미의식이 슬픔과 외로움만을 담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자리한 삶의 본질적인 아름다움까지 포착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노천명의 시는 정지용이 언급했듯 ‘연둣빛 수채화 같은 은은한 삶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화려하지 않으나, 일상적인 소재 속에서 깊은 서정을 끌어내는 그의 시는 직관적이고 순정적이다.
‘감사’ 역시 그러하다.
시인은 태양, 하늘, 대기와 같은 자연의 요소를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노래하면서도, 그 표현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이는 그가 추구한 단순함 속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비록 친일 행적으로 인해 문학사에서 평가절하된 측면이 있지만, 노천명의 시에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감성이 존재한다.
‘감사’는 그가 추구한 삶의 본질적 가치—자연과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과 경외—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이 시는 감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존재 자체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기꺼이 신에게 돌리는 겸손한 태도를 담고 있다.
요컨대, 노천명의 시 ‘감사’는 그의 삶의 철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외로운 환경 속에서도 삶의 단순한 기쁨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구원해 낸 시인은 독자들에게도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이는 단순한 서정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감사의 철학으로 귀결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