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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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치 탈출 대작전
ㅡ더 철저히 음치가 되어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노래방 마이크를 보면 신나서 달려가는 사람, 그리고 그 마이크를 보면 공포에 질려 도망가는 사람. 나는 후자였다. 아니, 그냥 도망가는 정도가 아니라 마이크만 봐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수준이었다. 도대체 이 세상에 음악이 왜 있는지, 왜 사람들은 모이면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음악의 존재 자체를 원망했다.
어린 시절, 내 인생의 음악 트라우마는 초등학교 시절 풍금 앞에서 시작되었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노래 실기시험을 보는 날, 내 차례가 왔다. 긴장된 마음으로 노래를 시작했는데, 음이 살짝 어긋났던 모양이다. 담임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내가 너한테 맞춰야 하냐?”
교실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친구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내 귓가를 때리는 순간, 내 안의 작은 자존감은 풍금 건반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평생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
그 다짐은 철통같이 지켜졌다. 소풍 가서도, 모임에서도, 결혼식 축가 자리에서도 나는 마이크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심지어 학생들이 소풍 가서 노래를 시킬까 봐 선생의 길마저 포기하려 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노래 한 번 부르지 않고 살아왔으니, 목소리에서 곰팡이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인생이란 게 참 알 수 없다. 피한다고 피했건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 마이크 앞에 서야 할 순간이 온다.
모임에서 “이제 OO선생 차례죠!”라는 말이 나오면, 도망갈 구멍도 없다. 한 번은 마지못해 노래를 시작했는데, 그 어색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때 깨달았다. ‘아, 이걸 이용하면 되겠구나!’
바로 그 순간, 나만의 음치 탈출 방법이 탄생했다.
노래를 잘 부르려고 애쓰는 대신, 아예 더 철저히 음치가 되기로 한 것이다. 노래를 부를 때 멜로디는 과감히 무시하고, 마치 책을 읽듯 단조롭게 읊조렸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렀다.
감정 1도 없이, 그냥 공지사항 읽듯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일행들은 배꼽 잡고 웃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짜냐?”며 놀라더니, 이내 “이 정도면 예술이다!”라며 나를 놔줬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무도 나에게 노래를 시키지 않았다. 성공이었다!
이 방법의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더 이상 노래에 대한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 내가 무대 위에 올라가도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마이크를 잡으면 모두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번엔 얼마나 웃길까?’
둘째, 자신감이 붙는다. 잘 부르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덕분에, 오히려 노래방에 가는 게 즐거워졌다. 그리고 셋째, 의외로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 예상치 못한 웃음을 주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니, 모임의 인기스타가 되기도 한다.
결론은 이렇다.
음치 탈출의 비법은 더 철저히 음치가 되는 것이다. 노래를 잘하려고 애쓰는 대신, ‘못하는’ 걸 아예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면 된다. 사람들이 웃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노래로 세상을 정복한 셈이다.
그러니, 이제 노래방 마이크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마이크를 잡고 당당하게 외쳐라.
“내가 너희를 위해 노래한다!
근데,
기대는 하지 마라!”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