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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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삶 구경하기 대회
세상 사람들은 참 바쁘다.
자기 일 하기도 벅찰 텐데, 남의 일에 관심 두랴, 참견하랴 정신이 없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사람들의 최대 취미는 ‘남의 삶 구경하기’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인스타그램이 이리도 흥하는 거다.
남의 밥상, 남의 여행, 남의 애인, 심지어 남의 고양이까지 구경하느라 데이터가 모자랄 지경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모자라, 자기 삶도 살짝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샘솟는다. 슬쩍 올려놓는 커피 한 잔, 거울 셀카, 심지어 푸들 강아지 산책시키는 장면까지도 ‘이거 봐라, 나 이렇게 산다’고 자랑하고픈 마음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이게 또 묘한 게, 일부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아주 적극적으로 끌어당긴다. 속옷 끈을 슬쩍 보여준다든지, 배꼽티로 배를 대낮에 공개하는 패기 넘치는 분들도 있다. 이들을 우린 흔히 '관종’이라고 부른다. 관종, 즉 관심 종자들. 관심을 먹고사는 이들의 패션은 한여름 땡볕보다 더 뜨겁다. 문제는 이런 분들을 마주칠 때, 도대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하다는 거다. 정면을 보자니 민망하고, 딴청 부리자니 괜히 더 어색하고, 하늘을 바라보자니 지하철 천장이 그리도 아름다운지 새삼스럽다.
오늘도 어김없이 지하철을 탔다. 나는 주로 지하철에서 글을 쓴다. 오늘은 ‘음치 탈출’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었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순간 어디선가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그냥 웃긴 영상이라도 보는가 보다 했는데, 이 웃음소리가 점점 신음에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내 바로 옆에서 터져 나오는 게 아닌가.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어떤 아저씨가 목을 빼고 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얼굴에 웃음을 참느라 핏대를 세운 채로 말이다. 내 글을 보고 웃음을 참고 있는 그 표정은 마치, ‘이 사람이 음치 탈출이라니, 하하!’라고 외치는 듯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생각했다.
‘이것은 범죄다.~^^'
남의 글을 훔쳐보고 웃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신음소리까지 내며 조롱하는 것은 명백한 지하철 범죄다! 나는 휴대폰을 슬쩍 닫으며 그 아저씨와 눈을 마주쳤다. 아저씨는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쿨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입꼬리는 여전히 올라가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났다. 아니, 생각해 보면 내가 쓴 글이 웃기긴 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웃어도 되는 건가? 인스타그램에 내 일상을 올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세상은 참으로 묘하다.
누군가는 남의 삶을 궁금해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지하철에서 마주친 그 아저씨도, 어쩌면 남의 삶 구경하기 대회에 참가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의도치 않게 그 대회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결국, 지하철을 빠져나오며 나는 생각했다.
‘다음에는 더 웃긴 글을 써야겠다.’ 어차피 남들이 들여다볼 거라면, 그냥 웃기게 써서 그들의 하루를 즐겁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혹시 모른다.
내 글을 들여다본 그 아저씨가 나중에 인스타그램에서 내 계정을 찾고, 팔로우라도 할지. 세상일은 알 수 없는 법이다.
이렇게 오늘도 남의 삶은 누군가의 구경거리가 되고, 누군가는 또 남의 시선을 즐긴다. 관심이라는 이름의 묘한 연결 고리가 우리 모두를 이어주고 있는 셈이다.
뭐, 어찌 됐든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내 삶을 살짝 보여주는 것도, 다 사람 사는 재미 아니겠나.
다만
다음엔, 지하철에서 너무 대놓고 들여다보진 말자. 그것은, 명백한 범죄니까!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