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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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허구, 그 어름에서의 선택
팩트는 단순히 사실 그 자체다.
검증 가능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의 조각들.
반면 픽션은 상상력의 산물로, 창작자가 만들어낸 허구이다.
둘 사이에는 명확한 구분이 있다. 사실은 진실을 말하고, 허구는 거짓을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이 단순한 이분법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때로는 진실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다가와 마음을 베고, 거짓이 오히려 따뜻한 위로가 되어 마음을 어루만진다.
팩트가 항상 옳은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상대를 위한 최선일까? 우리는 종종 "진실은 아프다"라고 말한다. 그 말처럼, 사실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약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사실, 냉혹한 현실을 직면하게 하는 진실은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사실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은 무시할 수 없다. 때로는 그 고통이 너무 커서 관계를 단절시키거나, 마음의 상처로 남기도 한다.
반면, 픽션은 허구임에도 놀라운 힘을 가진다. 소설 한 권, 영화 한 편, 혹은 따뜻한 거짓말 한 마디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삶의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 말은 상대에게 용기를 준다. 픽션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 이는 단순한 기만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신적 자양분이다.
이렇듯 팩트와 픽션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팩트가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때로는 그것을 덮는 따뜻한 픽션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물론 이는 진실을 영원히 숨기자는 의미가 아니다. 진실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 시기, 그리고 그것이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다. 무작정 진실만을 내세우는 것은 배려 없는 행동이 될 수 있다.
한편으로, 픽션이 팩트보다 나을 때가 있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취약성과 연관이 있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모든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때로는 거짓된 희망이라도 그것이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픽션이 주는 위안은 순간적인 기만이 아니라, 더 나은 현실로 나아가기 위한 힘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어린 시절 우리가 동화 속에서 배운 교훈들, 상상의 세계에서 찾은 용기와 희망은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점도 있다. 픽션이 지나치게 현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문제가 된다. 허구에만 의존하여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결국 자기 기만일 뿐이다. 따라서 팩트와 픽션의 균형이 중요하다. 때로는 진실을 직시하고, 때로는 허구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 이 두 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우리는 보다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팩트와 픽션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는 절대적인 답이 없다. 상황과 관계, 그리고 개인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팩트가 상처를 줄 것이라면, 따뜻한 픽션으로 감싸는 지혜가 필요하다.
반면, 허구가 지나친 현실 회피로 이어진다면,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진실과 허구,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지만, 동시에 인간 삶 속에서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다. 팩트는 우리를 현실로 이끌고, 픽션은 그 현실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둘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과 타인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팩트와 픽션의 경계에서, 우리는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