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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의 윤동주의 '서시'에 대한 또 다른 시각 2.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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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서시'에 대한 또 다른 시각
ㅡ도덕적 성찰과 역사적 위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윤동주의 '서시'는 한국 문학사에서 순수한 내면적 성찰을 담은 대표적 시로 평가받아 왔다.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해석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의 문학적 가치가 높이 평가될 수 있음에도 , 윤동주의 사상과 행적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맹자의 군자삼락에서 비롯된 표절인가?

'서시'의 첫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은 윤동주의 삶의 목표와 철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도덕성을 지키고자 했으며, ‘부끄러움 없는 삶’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그러나 이 구절이 맹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 중 두 번째 즐거움인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맹자가 말한 ‘앙불괴어천(仰不愧於天)’은 군자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윤동주의 표현과 상당 부분 겹친다. 이를 단순한 차용이라 볼 수도 있고, 시대적 맥락에서 필연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를 표절剽竊로 간주하며, 윤동주의 창작적 독창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표절 여부’가 아니라, 윤동주의 도덕적 가치관이 과연 독창적인 것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윤동주의 시적 언어는 세련되고 감성적이지만, 그 철학적 뿌리는 전통적인 동양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성리학적 가치관을 계승한 채 도덕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 윤동주의 일본 유학

—그는 왜 침략국의 교육을 받았는가?

윤동주는 조국을 빼앗긴 시대에 태어나, 누구보다 민족적 정체성과 식민지 현실의 고통을 깊이 인식했던 인물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는가?

1930~40년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만주,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무력 항쟁을 벌이며 목숨을 걸고 싸웠다. 김구, 안중근, 윤봉길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저항했다. 하지만 윤동주는 그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일본의 릿쿄대학과 교토의 도시샤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며,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교육을 받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는 왜 침략국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는가?"
단순히 ‘더 나은 학문적 환경을 원해서’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이는 조선의 지식인들이 독립운동을 위해 택한 길과는 다른 노선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을 적으로 규정하고 무력 투쟁을 감행했지만, 윤동주는 오히려 일본으로 가서 그들의 학문을 배우는 길을 선택했다.

그가 일본에서 받은 교육이 오롯이 ‘식민지 체제에 동조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는 시대적 현실과 비교했을 때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일본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의 행적을 단순히 ‘조국을 위한 희생’으로만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윤동주는 조국을 위해 희생당했는가?

윤동주의 사망 원인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수감 중 사망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그에게 생체 실험을 가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성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사건이다. 허나 그가 직접적인 항일운동을 하다가 희생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그는 총을 들고 싸우지 않았다. 그가 일본에 의해 처형된 것도 아니다. 그는 ‘문학적 저항’을 했을 뿐이며, 이는 그가 무력 독립운동과는 다른 형태의 저항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의 죽음을 ‘조국을 위한 희생’으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윤동주의 삶과 그의 '서시'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부끄럼 없는 삶’이라는 윤리적 가치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독립을 위한 실질적인 행동과 연결되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서시'가 남긴 것
—윤동주의 문학은 시대를 초월하는가?

'서시'는 그의 문학적 신념과 도덕적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는 직접적인 무력 투쟁이 아니라, ‘윤리적 성찰’을 통해 시대를 견뎌내려 했다. 그러한 태도가 과연 그 시대의 현실을 바꿀 수 있었을까?

그의 시는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주지만, 그것이 ‘항일 정신’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윤동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살아냈지만, 그의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 저항이었는지는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

□ 윤동주는 도덕적 성찰을 남긴 문학가인가,

아니면 시대적 현실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지식인인가?


윤동주의 '서시'는 분명히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단순히 ‘항일 시인’이라고만 정의할 수 없다. 그는 조국을 떠나 일본에서 공부했고, 결국 일본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문학적 가치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가 실제로 시대적 현실에 적극적으로 맞섰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서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부끄럼 없는 삶’이지만, 우리가 시대를 살아가며 가져야 할 태도는 단순한 윤리적 성찰을 넘어서야 한다.

윤동주는 문학을 통해 시대를 고민했지만, 그 고민이 행동으로까지 이어졌는지는 불분명하다. 그의 시가 시대를 초월하는 것은 맞지만, 그의 행적을 독립운동가들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요컨대, 윤동주는 ‘문학적 성찰을 남긴 시인’이었으며, ‘직접적인 항일 투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각을 보다 객관적으로 가져야 한다. '서시'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지만, 그 감동이 반드시 ‘역사적 투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를 존중하되, 그의 행적을 다시 성찰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윤동주의 '서시'를 21세기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올바른 접근법일 것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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