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한 지붕 아래, 네 가정의 아침
정용애
한 지붕 아래 네 가정이 함께 사는 집, 그곳의 아침은 언제나 부산했다. 꿈결을 깨우는 건 자명종이 아니라 대문 밖 바위 위 닭장에서 들려오는 ‘삐약삐약’ 소리였다. 병아리들은 모이를 달라고 목청을 높였고, 누렁이와 바둑이는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며 ‘낑낑’ 댔다. 마치 ‘우리도 아침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어!’라고 외치는 듯했다.
1호 방 할아버지는 습관처럼 거친 기침을 하시며 아침을 열었다. 2호 방 혜정이 아주머니는 부엌에서 쌀을 씻으며 중얼거렸다.
"곤로에 기름이 떨어졌네. 기름 사러 가야지."
3호 방에서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순정아, 너 또 이불에 지도 그렸구나!"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이들의 웃음과 변명 소리가 뒤섞인다. 따뜻한 아침 햇살보다 먼저 달아오르는 집안 풍경이었다.
4호 우리 방에서도 전쟁이 벌어졌다.
"5분만 더 잘게요!"
아이들은 이불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꿈속에 더 머물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막내는 언니들보다 먼저 눈을 번쩍 뜨고 세숫대야를 움켜쥐어 밖으로 내달렸다. 먼저 쓰기 위해서였다.
둘째는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며 투덜댔다.
"막내야, 언니 이러고 앉아 있을 테니까, 이 좀 닦아 줄래?"
막내는 씩 웃더니 물에 적신 수건을 들이밀었다.
이불을 걷어내자 방바닥에 바지가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엄마가 그것을 집어 들고 물었다.
"이 바지 누구 거야?"
둘째는 빙긋 웃으며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내가 늦게 일어나면 언니랑 동생이 먼저 입어버리니까, 어젯밤 몰래 숨겨뒀지!"
그 말에 방 안이 웃음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엄마의 마음 한편은 묵직하게 저려왔다.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아빠 엄마가 가진 건 많지 않지만, 너희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조금만 더 참자. 수돗물도 실컷 쓰고, 세숫대야도 하나 더 살게.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건 다른 거야. 이웃 어른들께 인사 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자라는 것. 꽃처럼 고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그것만큼은 꼭 지켜주렴."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햇살이 창을 넘어 방 안 가득 스며들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아도, 이 작은 공간에는 사랑과 온기가 넘쳐흘렀다. 부모의 마음, 아이들의 웃음, 그리고 함께 맞이하는 소란스러운 아침이, 이 집의 가장 아름다운 자산이었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정용애 작가의 삶과 가치관이 스며든 이야기
정용애 작가의 글은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결이 묻어나는 기록이며, 가난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가족의 연대에 대한 찬가이다. 이 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부족함 속에서 꽃 피우는 사랑’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가족들은 서로를 향한 애정과 배려로 하루를 시작한다. 병아리들의 울음소리, 강아지들의 보채는 소리, 할아버지의 기침과 이웃집 아이들의 부산한 소란까지—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생생한 합창을 이룬다.
가난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작가는 가난을 결핍의 상징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것이 가족을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는 힘이 됨을 보여준다. "수돗물도 실컷 쓰고, 세숫대야도 하나 더 살게"라는 부모의 다짐은 물질적 풍요가 아닌, 자식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어 하는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작가가 진정 강조하는 것은 그보다 더 깊은 가치이다. "이웃 어른들께 인사 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꽃처럼 예쁜 마음으로 자라거라"라는 부모의 말은, 물질보다 더 중요한 정신적 유산을 자식들에게 남기고자 하는 부모의 소망을 담고 있다.
작품 속 미의식: 소박한 일상 속의 따뜻한 서정
정용애 작가의 미의식은 화려한 언어의 수사나 극적인 서사에 있지 않다. 그의 글은 담백하면서도 정겹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만든다. 이 글의 미학은 순간적인 장면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데 있다. 예컨대, "이불을 걷어내자 방바닥에 바지가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는 장면은 가난한 살림살이의 현실을 은유하면서도,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킨다. "어젯밤 몰래 숨겨뒀지!"라는 둘째의 천진한 고백에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이의 지혜가 녹아 있다.
한 지붕 네 가족의 이야기에서 발견하는 공동체적 가치
이 글은 단순한 가족의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70~80년대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여러 가정이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며 서로의 삶이 얽히고설킨다. 누군가는 곤로의 기름을 걱정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실수를 웃음으로 받아들이며, 또 누군가는 기침 소리로 하루를 연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총평
정용애 작가의 이 글은 가난과 결핍을 그리면서도 결코 그것을 비극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연대, 그리고 소박한 희망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의 문장은 꾸밈이 없지만, 그 속에는 삶의 진실함이 담겨 있다. 작가가 전라도에서 서울로 상경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서 따뜻함을 지켜나가는 모습은 그의 삶에 대한 철학을 반영한다.
결국, 이 글이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것이다. 삶이 비록 고단할지라도, 함께라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가난은 마음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더욱 깊게 한다. 작가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일상의 작은 풍경들을 통해 조용히 전하고 있다.
■
정용애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났습니다. 제 어린 시절도 작가님과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요.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그때, 어른들은 서로의 자식들을 보살피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아이들은 작은 것 하나도 나눠 쓰며 자랐습니다. 세숫대야 하나를 두고 먼저 쓰겠다고 경쟁하던 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자려고 이불속에서 버티던 일, 늦잠을 자면 형제들이 먼저 옷을 챙겨 가버려 몰래 숨겨놓고 자던 일… 어느 것 하나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우리 집에도 닭장이 있었습니다. 아침이면 닭들이 요란한 울음소리로 하루를 깨웠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짓느라 부산하셨죠. 방 안에서는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들리고, 옆집에서는 부지런한 아주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소리가 났습니다. 마치 하나의 리듬처럼, 한 곡의 노래처럼, 모든 소리가 섞여 하루를 열어갔습니다.
가난했지만, 그래도 정이 있었습니다. 이웃끼리 반찬 한 가지라도 더 나누려고 했고, 마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누구의 자식인지 구분 없이 함께 어울려 컸습니다. 물 한 모금도 아껴 마시던 시절이었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웠습니다.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먹먹해졌습니다.
작가님이 글 속에서 들려주신 부모님의 말씀, “아빠 엄마가 가진 것은 없지만 너희들을 아주 많이 사랑하는 거 알지? 조금만 더 참자.” 이 말이 저를 오래 붙잡았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 부모님께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힘들어도 아프지 말고 씩씩하게 자라라는 그 당부. 물질적으로 채워주지 못하는 미안함 속에서도,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더 나은 날을 꿈꾸셨습니다. 그 바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을 견뎌온 우리는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가장 그리운 것은 화려한 것들이 아닙니다. 작가님이 그려주신, 닭장의 병아리 소리, 서로 엉켜 자던 따뜻한 이불, 그리고 부모님의 손길이 담긴 그 아침 풍경입니다. 그것들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 것들이었고,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히지 않는 것들입니다.
작가님, 이렇게 글로 다시 마주한 그 시절이 참 반가우면서도 가슴이 아립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때의 온기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이 편지를 띄웁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좋은 글 남겨 주시길 바랍니다.
한때 같은 시절을 살아온 독자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