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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사실의 하루

김왕식







백사실의 하루



정용애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 기운을 품고 있을 때, 백사실의 하루는 시작된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계곡에 첫소리를 올리는 것은 수탉이었다. 대문 밖 바위 위에서 목청껏 ‘꼬끼오, 꼬끼오’ 울어댄다. 집안 구석에서 꼬리를 흔들던 맹순이가 덩달아 ‘멍멍’ 짖으며 잠든 이들을 깨운다. 잠이 덜 깬 몸을 일으켜 바위 위로 올라가 두 팔을 활짝 벌린다. 인왕산 너머로 희미한 여명이 번져오고, 백사실 산봉우리 위로 햇빛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찬양을 부르며 깊이 숨을 들이마신다. 한때는 생활이 어려워 하나님을 떠났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다. 늘 기다리시고, 늘 곁에 계셨다. 그 은혜를 다시금 떠올리며 하루를 맞이한다.

아이들이 깨어난다. “엄마, 빨래하러 가자!” 딸 둘이 먼저 앞장선다. 큰 대야에 옷을 담아 머리에 이고, 계단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이 길은 오직 우리만이 아는 길이다. 계곡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이내 물가에 다다른다. 발을 담그기엔 아직 이른 아침이라 물이 차갑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으이구, 아침부터 난리여!”

아이들은 찬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장구를 치며 깔깔댄다. 방망이로 옷을 두들기며 빨래를 하는 손길이 바빠진다. 탁, 탁, 방망이 소리가 계곡물소리와 어우러져 경쾌하게 울려 퍼진다.

수탉이 다시 바위 위에서 울어댄다. ‘꼬끼오, 꼬끼오!’ 뒤늦게 맹순이도 ‘멍멍’으로 화답한다. 햇살이 계곡 사이로 스며들고, 백사실의 돌길 위에 따스한 빛이 내려앉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곡을 가득 채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물에 젖은 빨래를 대야에 담고, 계단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온다. 저녁이 다가오면서 백사실 계곡에는 서서히 노을이 스며든다.

"엄마, 하늘 봐봐!"

아이들이 하늘을 가리킨다. 계곡 너머로 붉게 물든 하늘이 펼쳐져 있다. 해님도 우리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백사실 계곡에 너희들이 있어서 사람 사는 것 같구나.”

그렇게 백사실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작품은 백사실 계곡을 배경으로 한 하루의 서정을 서사적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일상의 기록을 넘어, 신앙적 회복과 자연 속에서 체험하는 평온을 담아내고 있다. 어려웠던 삶의 순간에도 떠나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제는 찬양과 기도로 하루를 열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가치철학은 신앙, 가족,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에 대한 깊은 신뢰로 요약할 수 있다. 한때 삶의 고단함에 지쳐 하나님을 떠났던 순간이 있었지만, 결국 그 은혜를 다시 깨닫고 감사하는 태도는 신앙인의 삶을 진솔하게 형상화한 부분이다. 또한,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자연과 교감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은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의 미의식은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 그리고 순간 속에 깃든 영원의 아름다움에 있다. 계곡물소리, 수탉의 울음, 아이들의 웃음소리, 노을에 물든 하늘 등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섞이며 생동감 있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전라도 사투리가 섞인 대사는 사실감을 더하며, 향토적 정서를 부각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자연을 의인화하여 “해님도 백사실 계곡에 너희들이 있어서 사람 사는 것 같구나”라고 말하는 부분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작품의 서정성을 극대화한다.

결국, 이 글은 단순한 생활의 기록이 아니라, 고된 현실 속에서도 신앙과 자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 노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박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ㅡ 청람





정용애 여사님께




용애 씨, 안녕하세요? 참 오랜만이죠? 예전 백사실에서 함께 지내던 복실이 엄마입니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지만, 그 시절 우리 함께 웃고 울던 날들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아침이면 가장 먼저 백사실을 깨우던 건 닭 울음소리였죠. 아니, 사실은 닭이 아니라 용애 씨가 먼저 깨웠을지도 모르겠네요. 새벽마다 바위 위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찬양을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저는 그때마다 ‘에휴, 저 양반은 참 대단하다’ 하고 감탄했어요.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렇게 굳건하게 지키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용애 씨가 좀 신기했어요. 남들 같으면 당장 먹고사는 걱정에 한숨부터 나올 텐데, 용애 씨는 아침마다 찬양부터 하셨으니까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아이들과 함께 깔깔대며 웃는 모습도 참 신기했어요. 보통은 생활이 어려우면 얼굴에 그늘부터 지는데, 용애 씨네 집에서는 그런 기운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아니,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때 용애 씨가 계곡에서 빨래하다가 미끄러졌던 거 기억하세요? 대야째 물에 빠져서 온몸이 흠뻑 젖었는데, 짜증을 내기는커녕 “아이고, 오늘은 침례식이네~” 하면서 배꼽 잡고 웃으셨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서 참 놀랐어요. 저 같으면 화부터 났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웃어넘길 수 있었을까 싶었죠. 그날 저녁 집에 가서 남편한테 그 얘기를 하면서도 한참 웃었답니다.

사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신앙이 있다고 하면서도 현실 앞에서는 불안하고 흔들리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용애 씨는 달랐어요. 상황이 어렵든, 힘들든, 늘 같은 자리에서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하루를 열었죠. 그 모습이 저한테도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몰라요. 저도 한때는 ‘저렇게 해서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결국 달라졌잖아요. 용애 씨는 그 신앙으로 가정을 지켰고, 두 따님도 그렇게 사랑과 믿음 속에서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백사실의 하루는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용애 씨의 삶 그 자체였어요. 계곡물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어우러진 그곳에서, 용애 씨는 힘들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살아갔어요. 그리고 지금, 그 신앙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 열매를 맺었는지 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 한 번, 다시 백사실에 가 보실래요? 수탉도, 맹순이도 이제 없겠지만, 계곡물소리는 여전히 흐르고 있을 거예요. 그 바위 위에서 다시 한 번 찬양하는 용애 씨의 모습을 보고 싶네요.

늘 건강하세요. 그리고 지금처럼 행복하세요. 저는 언제나 용애 씨를 응원합니다.


늘 이웃이었던 친구, 복실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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