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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피어난 빛

김왕식










절망 속에서 피어난 빛



정용애





백사실 계곡에는 계절이 흐르며 꽃이 피고 졌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세월은 조용히 흘러, 어느새 집까지 수돗물이 들어왔다. 정부에서 무허가 주택에도 수돗물을 공급한다고 발표하더니, 마침내 이곳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생활 속 불편이 하나둘 해결되니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딸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왔다.

"아빠가 시골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셨어. 많이 다쳤대…"

순간 손이 떨렸다. 허둥지둥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머리와 허리를 심하게 다쳐 수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바로 짐을 챙겨 시골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어두운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고도 불안했다.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하나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두 달 전, 아침 금식하며 기도하라 하시더니… 이제 어쩌란 말입니까. 하나님도 이젠 안 계신 겁니까. 내일 아침부터는 그냥 밥 먹을랍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눈물이 흐르는데, 옆자리 사람이 볼까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등이 따뜻하게 감싸지는 느낌이 들었다.

‘딸아, 내가 네 옆에 있잖아. 울지 말고 걱정하지 말거라.’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어쩌면, 아니 분명히 어디선가 들었던 음성이었다.

밤새 울고, 기도하고, 또 울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남편은 이마를 꿰맨 채 머리를 짧게 깎고, 허리는 붕대에 단단히 감겨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이 눈앞에 들어오자, 원망이 가슴을 차올랐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이 일에 무슨 뜻이 있는 걸까.’

제발 꿈이었으면, 간절히 바라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남편은 서울 을지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다시 검사가 시작되자 남편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고성을 질렀다. 그의 아픔이 내 심장을 찢었다. 진단 결과는 석 달. 한 달간 병원에서 간호하다가, 다섯 살 막내딸을 아빠 곁에 보호자로 남겨두고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 달, 두 달… 백일이 가까워질 무렵, 담당 의사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습니다. 종교가 없다면, 교회에 나가 하나님을 믿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때 남편이 내 손을 잡았다.

“여보, 나 퇴원하면 교회 나갈 테니… 우리 세검정중앙교회에 다니세.”

순간, 내 안에 웅크려 있던 어둠이 한 줄기 빛 앞에서 움츠러들었다. 이 모든 것이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기 위한 길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

그해 11월, 우리는 세검정중앙교회에 등록했다.

오랜 시간 목말랐던 길 위에, 마침내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 글은 한 개인의 삶 속에서 찾아오는 절망과 희망, 그리고 신앙을 통한 내적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흐르는 자연의 질서는 계절의 변화와 함께 서서히 자리 잡아가고, 삶의 불편함이 차례로 해결되는 과정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안도와 감사의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평온한 일상 속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이 찾아왔을 때, 작가는 인간의 나약함과 신 앞에서의 혼란을 솔직하게 마주하며 서사를 이끌어 간다.

이 글의 미의식은 인간이 겪는 시련의 깊이를 세밀한 심리 묘사로 펼쳐 보이며, 단순한 감정의 나열이 아니라 한 인간이 고통을 통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있다. 차창에 비친 낯선 얼굴,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움켜쥔 손, 그리고 절규 속에서 들려오는 따뜻한 음성은 감각적인 묘사로 독자의 내면을 두드린다. 특히 "딸아, 내가 네 옆에 있잖아"라는 구절에서 신의 존재가 은은하게 드러나면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빛이 스며들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작품이 전하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깨달음’의 순간에 있다. 남편의 병상에서 들려온 "우리 세검정중앙교회에 다니세"라는 말은 단순한 결심을 넘어 삶의 전환점이자 작가가 신앙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 결정적 순간이다.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작가의 삶이 그분께 이끌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지막 문장인 "오랜 시간 목말랐던 길 위에, 마침내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듯했다"는 삶의 목마름이 해소되는 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궁극적인 평안과 구원의 의미를 시적으로 전달한다.

작가의 가치철학은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으며, 결국에는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신의 뜻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작가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도 연결된다. 작품 속 인물의 감정선은 극적이면서도 절제된 문장으로 표현되며, 단순한 사건의 나열이 아닌 한 편의 문학적 서사로 형상화된다.

이 글이 가지는 미적 가치는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면서도 독자가 함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에 있다. 단순한 신앙 고백을 넘어, 인간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시련과 그 속에서 발견하는 빛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신앙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자리 잡으며 완성되는 과정임을 보여주는 이 글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한 편의 깊이 있는 산문이라 할 수 있다.




정용애 작가님께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글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독자입니다.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마치 작가님의 삶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백사실 계곡의 조용한 변화와 함께 시작된 이야기는 너무나도 평온했기에, 이후에 닥칠 사건을 더욱 가슴 저미게 만들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작은 변화에도 기뻐하는 삶의 태도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닥쳤을 때, 삶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그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특히 딸들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 손이 떨리던 순간,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어 남편의 상태를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저 역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사가 불확실한 순간, 사람은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리던 기도, ‘하나님도 이젠 안 계신 겁니까’라는 절규는 그 절망의 깊이를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울음 속에서 등을 감싸던 따뜻한 기운, 그리고 ‘딸아, 내가 네 옆에 있잖아’라는 익숙한 목소리는 저까지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문득, 힘든 순간마다 내 곁을 지키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마주한 남편의 모습은 너무도 처참했고, 작가님의 원망과 혼란도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닥친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순간. 저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함께 계셨다는 것을요.

작가님께서 남편을 간호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간, 그리고 막내딸을 병원에 남겨두고 일을 다니던 나날들이 얼마나 고되셨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기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셨기에, 이 글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담당 의사의 말 한마디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께서 ‘우리 세검정중앙교회에 다니세’라고 말씀하신 순간, 그 모든 과정이 결국 하나님께서 이끄신 길임을 작가님께서 깨닫게 되신 장면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저는 ‘삶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요.

마지막 문장, "오랜 시간 목말랐던 길 위에, 마침내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듯했다"는 표현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절망과 슬픔 속에서도 끝내 생명의 샘을 찾은 그 순간을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단순한 신앙 고백을 넘어, 신앙을 향한 여정을 함께 걸어가게 만드는 힘을 가졌습니다. 저 역시 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깊이 있는 글을 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평안과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한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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