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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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
브런치스토리 시인 사유
긴 겨울이 채가시기도 전에
길가에 노랗게 번지는 개나리
찬바람이 남아 있는 골목에서도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
추위가 물러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따스한 햇살을 탐하지도 않고
그저 제때가 되면 피어나는 개나리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 얼어 있는 마음에도
작은 온기가 남아 있다면
그 온기 하나로 버텨보는 것 누군가에게는 너무 이른 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기다림 끝의 약속
어느새 가지마다 노란 불꽃이 타오르면 그제야 사람들은 봄이 왔음을 안다. 눈길도 주지 않던 골목 어귀에서 세상을 환히 밝혀주고 나서야
조용히 잎을 내어주는 꽃.
누군가의 봄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삶의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누구의 봄이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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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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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스토리 작가 사유 시인의
'개나리'는 개나리꽃의 생명력과 시적 상징을 통해 삶의 본질과 인간관계를 성찰하는 작품이다. 이 시는 단순한 자연 관찰을 넘어, 존재의 태도와 삶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개나리가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피어나듯이, 인간 또한 외부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때를 맞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묻는다.
첫 연에서 개나리는 길가에 노랗게 번지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여기서 개나리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특히 “찬바람이 남아 있는 골목에서도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이라는 구절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존재의 강인함을 강조한다.
둘째 연에서는 개나리가 계절을 재촉하지도 않고 따스한 햇살을 탐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의 때가 되면 피어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조급하게 구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태도, 즉 삶을 억지로 조정하려 하기보다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드러난다.
이어지는 연에서 ‘아직 얼어 있는 마음에도 작은 온기가 남아 있다면 그 온기 하나로 버텨보는 것’이라는 구절은 삶의 인내와 희망을 노래한다. 개나리가 어떤 이에게는 너무 이른 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간절한 기다림 끝의 약속일 수도 있다는 대조적인 표현은, 삶의 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존재가 타인에게 주는 의미에 대한 사유를 깊게 확장한다.
특히 마지막 연은 이 시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개나리는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던 골목에서 피어나 세상을 환히 밝히고 나서야 조용히 잎을 내어준다. 여기서 개나리는 보상을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존재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며, 시인은 이것이야말로 ‘누군가의 봄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나리가 그러하듯, 인간도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의 봄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지막 구절에서 독자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당신은 누구의 봄이 되고 있는가.”
사유 시인은 이 작품에서 자연의 섭리를 삶의 가치관과 연결하여 풀어낸다. 특히 개나리에서 드러나는 미의식은 인위적인 장식이나 과장 없이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생명력과 존재의 의미를 강조하는 데 있다. 개나리가 보여주는 묵묵한 헌신과 순리를 따르는 태도는 삶과 연결되며, 이는 작가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다.
이 시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를 넘어, 존재와 관계, 그리고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개나리를 통해 ‘타인의 봄이 되어주는 것’이 곧 인생의 본질일 수 있다는 성찰을 이끌어내며, 독자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개나리'는 자연을 매개로 한 철학적 시각을 통해,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동시에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