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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다

김왕식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는 늘 멋쟁이였다.
가수 태진아를 빼닮은 얼굴,
양복은 언제나 맞춰 입고,
구두는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반짝였다.
인천에서 ‘대한신사양복점’ 단골로 통했고,
사람들은 그를 ‘멋쟁이 해병대’라 불렀다.

*어린 딸의 손을 꼭 잡고 병원에 가던 아버지.
겉으로는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했지만,
그 눈빛은 설렘으로 빛났다.
아버지가 병원에 가는 진짜 이유는
예쁜 간호사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엄마 몰래, 짧은 연애를 하러 가는 길.
혹여 엄마가 의심할까 봐,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을 데리고 갔다.
딸은 천진난만하게 보호자 노릇을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보호자가 아니라 공범이었다.

엄마는 시골에서 자란 여인이었다.
소박한 월남치마를 걸치고,
고운 손으로 아버지를 위해 밥을 짓고,
말없이 가정을 지켰다.
다투는 법도, 속내를 털어놓는 법도 몰랐다.
그저 묵묵히,
아버지가 바쁜 사람이라 믿으며 살았다.
아버지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 자녀들은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있었다.
엄마를 위해,
평생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뾰족구두와 핸드백을 사드리는 일이었다.
손끝에 물기 서린 엄마가
조심스레 그 구두를 신어 보던 날,
자녀들은 한껏 들떴다.
그날만큼은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여인이었다.

그 구두는 몇 번도 신지 못한 채,
신발장 한구석에 남겨졌다.
엄마는 2020년,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그 후로 남은 건,
홀로 된 아버지였다.
한때 누구보다 멋쟁이였던 아버지.
양복을 차려입고,
구두를 닦으며 거리를 활보하던 그 아버지가,
이제는 방 한가득 사진을 펼쳐놓고
흐린 눈으로 한 장, 한 장을 쓰다듬는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그때는 몰랐다고.

왜 더 잘해주지 못했냐고.
왜 한 번이라도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냐고.

살아 계실 때 잘하시지.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야 말할 수 있다.

엄마는 떠났고,
아버지는 남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세상에는 여전히,
엄마가 살아 있다.
흑백 사진 속에서,
바람결 스치는 목소리 속에서,
아버지의 그리움 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면서,
살아 계실 때,
왜 더 사랑하지 않았을까.


* 어린 딸은

브런치스토리 블라썸 도윤 작가이다.

도윤 작가는 아버님이 살아 계시기에

차마 쓸 수 없다고 했다.

하여

필자에게 전해 주어

받아 적은 글이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당신께




글을 읽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미소로 읽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쯤에는
눈가가 뜨거워지고 말았습니다.

멋쟁이이셨던 아버지,
양복을 차려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으셨던 그분,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살아오셨던 분이
이제는 방 안 가득 사진을 펼쳐놓고
눈시울을 붉힌다는 장면에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살아계실 때 잘하시지.’
그 문장이 참 오래 남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이제야 말할 수 있다고 적힌 부분에서
그저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했고,
어머니는 묵묵히 희생하셨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아버지가 홀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알게 되셨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를.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잘 몰랐다고.
그저 늘 곁에 있을 줄 알았다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한 번이라도 더 말할 걸.
이제는 사진을 보며 후회한다고.

저는 그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어
아버지에게 자주 전화를 겁니다.
한 번이라도 더 안부를 묻고,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습니다.

당신의 글을 읽고 나니
더 늦기 전에
아버지와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을 다해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서툴더라도 꼭 말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아버지가 오늘도
엄마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리워하고 계실까요?
그분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엄마가 살아 있겠지요.
이제야 깨달은 사랑이기에
더 간절하고 아픈 마음으로.

당신의 글 덕분에,
저는 오늘 더 소중한 것을 깨닫습니다.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부모님께
더 자주, 더 따뜻하게
제 마음을 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부디,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고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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