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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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치는 사람들
시인 백영호
사람들은 누구나
한 개의 종을 갖고 산다
갓난아이는
배가 고플 때
오줌을 쌌을 때
불편하거나 외로울 때
목소리 높여 종을 친다
질풍노도의 세대
중2 영철이는
이성을 만났거나 배 부를 때
목청 가다듬어 종을 쳤다
아파트 건너편 동에
철산 아재
평생을 한 잔 술로
희로애락 즐기다가
어젯밤 빈병만 쌓아 놓고
하늘 가셨다
임 울리던 종소리
'봄날은 간다'~
귀에 쟁여 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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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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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호의 '종 치는 사람들'은 삶을 하나의 ‘종’이라는 상징으로 형상화하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 작품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각자의 종을 울리며 살아간다. 시인은 이를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의 본질적 외침을 포착한다.
첫 연에서 신생아의 울음은 본능적이고 절박한 생존의 종소리다. 배고픔, 불편함, 외로움 속에서 울음은 존재의 신호가 된다. 이는 삶의 시작점에서부터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는 필연성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청소년기의 종소리는 변화와 설렘, 감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울린다. 중2 영철이가 특정한 순간마다 종을 치는 모습은 삶의 에너지가 가장 분출되는 시기를 암시한다.
마지막 연의 ‘철산 아재’는 생의 종착점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평생 술 한 잔으로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그는 이제 빈 병만 남기고 떠난다. 그의 종소리는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로 형상화되며, 한 시대를 마감하는 듯한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종소리는 여기서 삶의 흔적으로 남아, 존재의 마지막 흔적이 된다. 이는 단순한 죽음의 기록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삶이 남긴 울림이 어떻게 세상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의 가장 큰 미덕은 군더더기 없는 서술 속에서 강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화려한 수사를 배제하고 일상의 단면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담아낸다. 신생아, 청소년, 노인의 삶을 각각의 종소리로 표현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을 압축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
백영호 시인은 시를 통해 인간이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결국 한 곡의 노래처럼 생을 마무리한다는 철학을 형상화한다. 삶은 끝이 있지만, 울린 종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종 치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상기시키며, 독자로 자신의 종소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