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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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응답, 그리고 사랑
정용애
주어진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다 보니, 남편의 건강도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었다. 주님과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기를 기도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도가 응답된 것은 단순한 인접이 아니라, 아예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살게 된 것이었다.
막상 교회 안으로 이사하려 하니 부담이 밀려왔다. 그 순간, 3년 전 1990년의 마지막 날, 송구영신예배에서 올린 신년 소원이 떠올랐다. 그때는 단지 "93년도에는 교회 가까운 곳에 월세집이라도 내 집 같은 집을 주세요"라고 기도했었다. 그런데 2년 11개월 만에 주님은 그보다 더한 응답을 주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니 거역할 수 없었다.
밤이면 예배당에 올라가 남편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살아계신 주님의 모습을 남편에게 보여 달라고 간절히 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집에서 제사가 있어 아침에만 교회 일을 돕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큰집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에 제사를 거부할 수도 없었다. 예배당에 올라가 기도했다.
"하나님, 살아계신 걸 알게 해 주세요. 저도 어쩔 수 없이 가야 합니다."
제사 음식 준비를 하며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주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했다. 형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고, 형님들은 다음 날 돌아갔다.
그런데 일주일 후, 셋째 형님이 갑자기 심한 병을 앓았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해 결국 무당을 찾아갔는데, 무당은 제사 음식이 문제라고 말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음식을 만들어 조상님이 드시지 못해 배가 고팠다며, 다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당과 함께 큰집에 온 형님들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낯설었다.
그 일 이후, 남편은 더욱 깊이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집사 직분까지 받았다.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여보, 사실은 결혼할 때 한 가지 속인 게 있어."
그 말에 눈을 마주 보았다.
"우리 집 논이 99홉 마지기라고 했잖아. 사실은 뻥이었어. 그런데 당신은 그걸 알면서도 아무 말 없이 살더라. 바보같이 믿어주는 걸 보면서 마음이 짠해지고, 고맙고, 더 예쁘고, 사랑스럽더라."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이제 술과 담배도 끊을게. 살아계신 주님께 회개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보자."
그 순간,
남편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아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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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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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애 작가의 삶의 가치철학과 미의식 – ‘총평
정용애 작가의 글은 신앙 고백을 넘어, 삶 속에서 신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의 서사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신앙과 삶의 섬세한 교차점에서 빚어진 내적 변화를 담고 있다. 이 글에서도 작가는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신앙을 통한 내적 성숙,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부드럽지만 힘 있는 문장으로 풀어낸다.
정용애 작가는 자신의 삶을 "주어진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다 보니"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그의 가치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대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신앙으로 의미를 찾아간다. 삶의 시련과 도전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어진 것이라 믿고 순응하는 태도는, 믿음의 힘에서 나오는 수용이다.
교회 건물 안으로 이사하게 된 사건은 그저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가 아니다. 이는 기도의 응답이자, 하나님이 주시는 길이라는 신념을 통해 삶을 해석하는 작가의 시선을 보여준다. 그에게 삶이란 인간이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영역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그 길을 따르는 과정이다.
정용애 작가의 글에는 신앙이 중심을 이루지만, 신앙을 말하는 방식이 일방적이거나 경직되지 않다. 그는 사람의 마음이 변화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특히 남편이 신앙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삶의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깨달음으로 묘사된다. 무당의 말이 계기가 되었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아내의 꾸준한 기도와 믿음 속에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신앙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 속에서 경험되고 체험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신앙을 논하는 틀 안에서도 인간적인 사랑이 따뜻하게 살아 숨 쉰다는 점이다.
"바보같이 믿어주는 걸 보면서 마음이 짠해지고, 고맙고, 더 예쁘고, 사랑스럽더라."
이 대목은 신앙의 이야기에서 갑자기 인간적인 사랑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으로 독자를 이끈다. 배우자의 믿음을 지켜보며, 감사와 미안함, 그리고 깊어지는 애정을 느끼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 글의 미적 감각은 바로 신앙과 인간적인 사랑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데서 완성된다.
정용애 작가의 글은 신앙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가치철학은 기도 속에서 삶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신앙적 태도에 있으며, 미의식은 신앙과 인간적 사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서정성에서 빛을 발한다.
마지막 문장은 더없이 조용하고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 순간, 남편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아주 오래도록."
이 문장은 부부간의 애정을 넘어, 믿음과 신뢰 속에서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대화가 아니라 손을 잡는 행위로 모든 감정을 압축하는 방식은, 오히려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결국 정용애 작가의 글은, 삶이란 주어진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도로 인내하며, 사랑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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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애 작가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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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글을 읽으며 한동안 가만히 그 여운 속에 머물렀습니다. 단순한 신앙 간증이 아니라, 삶이 어떻게 신앙을 통해 변화하고, 또 신앙이 어떻게 삶 속에서 증명되는지를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신앙이란 단순한 교리나 의무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선택들 속에서 우리를 빚어가는 힘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기도의 응답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직접적으로 다가왔을 때 느끼셨을 부담감이 깊이 와닿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하면서도, 정작 응답이 찾아오면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교회 가까운 곳에서 살기를 바라셨는데, 하나님은 아예 교회 안으로 거처를 옮기는 길을 주셨지요. 예상보다 더 깊은 곳으로 부르실 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신 작가님의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또한 남편분의 변화 과정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순간의 기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삶의 여러 체험과 작은 사건들이 쌓여 결국 주님의 뜻을 따르게 된 모습이 무척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믿음이란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증거들로 스며든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조용한 기도와 인내가 남편의 변화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은, 신앙과 인간적인 사랑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을 이야기하면서도, 남편과의 삶 속에서 피어난 정(情)과 깊어지는 사랑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습니다. "바보같이 믿어주는 걸 보면서 마음이 짠해지고, 고맙고, 더 예쁘고, 사랑스럽더라"는 고백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심 어린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부부애를 넘어, 신앙이 가져다준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특별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남편의 손을 잡았다. 말없이, 아주 오래도록."
어떤 말보다도 더 깊고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이 하나가 되는 장면, 그리고 그저 손을 잡는 행위만으로 모든 감정을 전하는 그 조용한 아름다움이, 읽는 이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통해, 신앙이란 단순히 어려운 순간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 자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란 곧 믿음이며, 믿음이란 곧 사랑이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따뜻한 빛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