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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사랑과 훼방꾼의 딜레마

김왕식










꿀벌의 사랑과 훼방꾼의 딜레마





김왕식




고즈넉한 황톳길을 산책하던 어느 날, 길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작은 소동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누군가의 실수로 흙바닥에 떨어진 꿀벌 두 마리. 마치 격렬한 싸움을 벌이듯, 몸을 부딪치며 뒤엉켜 있었다. 싸우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허우적대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 마리는 허리가 끊긴 듯 발버둥 치고 있는 모양새였다.

사람에게 밟혀 이렇게 된 것일까? 아님 둘 사이에 어떤 운명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일까?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봐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광경이 애처롭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대로 두자니 마음이 불편했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또다시 밟기라도 하면,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테니까. 고민 끝에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 들어 조심스럽게 녀석들을 길섶으로 옮겼다. 그 순간,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아, 살아 있었구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제야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저 두 마리는 싸우고 있던 게 아니라, 짝짓기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사랑의 방해꾼이 되어버린 셈 아닌가? 서로를 향한 열정의 한가운데에서 난데없이 나뭇가지가 끼어들어, 한 마리는 허둥지둥 도망가고, 남은 한 마리는 땅에 나뒹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의 사랑이 방해받은 것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혹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웃어넘길 수 있을까?

이런 철학적 고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면,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봐, 꿀벌한테 너무 감정을 이입하는 거 아냐?"

또 어떤 이는 정색하며 나무랄 것이다.

"그거 곤충 학대죄 아냐?"

그 말을 듣고 나니, 가만히 있어도 범죄자가 된 기분이다. 좋은 뜻으로 한 일이 어째서 이렇게 오해를 사는 걸까? 나는 그저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을 했을 뿐인데.

문득,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돕는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그 사람의 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 충고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니 도대체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어떻게 하면 실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꿀벌의 사랑이 방해받았건, 구조가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은 것이건,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날아간 한 마리는 또 다른 꽃을 찾아갔을 것이고, 남은 한 마리도 언젠가는 다시 하늘을 향해 날개를 퍼덕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너무 깊게 고민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곤충 학대죄라며 혀를 찰지 몰라도, 누군가는 사랑의 조력자였다고 생각해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다만, 다음번에는 함부로 끼어들지 말고, 조금 더 신중히 지켜볼 일이다. 그러면 혹시 알까? 또 다른 꿀벌 두 마리가 길바닥에서 뒤엉켜 있을 때, 나는 섣불리 나뭇가지를 들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지도.

어쩌면, 사랑에도 방해하지 않는 미덕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ㅡ 청람

백주에 꿀벌의 애정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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