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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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겨울 코트
장 화백
나의 마지막 겨울코트.
지난해
구입한 짙은 회색의 워싱코트를
좋아한다.
좋은 옷을
입는 날은
언제나 기분이 상승되는 느낌이다.
막상 맘에 드는 옷을
춥고 특별한 날에만 입게 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다.
어쩌면
한 계절을 보내며
몇 번 정도만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단옷뿐만이
아니라
신발이며,
목도리, 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뀌었다.
다시 이 계절을
맞을 수 없다는
생각이 일어나며
나의 습관에는
변화가 있어났다.
별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니고 있던
것들 중,
외출 시나
일상에서도
제일 마음에 드는
좋은 옷이나 신발
가방 등 그 외의 것들을 사용한다.
다시는 접할 수 없을 소지품과
물건들을
아낌없이 애용하고
사용하련다.
그것이
그들을 위한
나의 마지막 배려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멋진 옷과
좋은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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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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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백은 생의 유한성을 깊이 받아들이며, 그것을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성찰한다. '마지막 겨울 코트'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글은 단순한 의복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남은 시간 속에서 존재를 바라보는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 장화백은 지난날 아껴 두었던 물건들을 이제는 거리낌 없이 사용하겠다고 선언한다. ‘좋은 옷을 입는 날은 언제나 기분이 상승되는 느낌이다’라는 문장에서 엿볼 수 있듯이, 과거에는 특별한 순간에만 꺼내 입던 의복이 이제는 일상으로 스며든다. ‘다시는 접할 수 없을 소지품과 물건들을 아낌없이 애용하고 사용하련다’는 그의 다짐은 단순한 소비의 태도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결단이다. 물건을 아끼는 것과 소중히 사용하는 것은 같아 보이지만, 전자는 유보의 개념이 강하고 후자는 현재성을 강조한다. 장화백은 후자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장화백의 예술관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삶과 예술을 분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글과 작품은 생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하며, 지금 이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태도를 반영한다. 과거를 붙잡거나 미래를 염려하기보다, 당장 손에 쥔 것을 최선을 다해 활용하는 태도. 이것이 장화백의 작품에도 담긴 정신이며, 마지막까지도 변하지 않는 그의 미의식이다.
그의 예술은 단순히 미적인 것에 대한 탐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고자 하는 태도이며,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응답이다. ‘나는 오늘 멋진 옷과 좋은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라는 마지막 문장은, 그의 의지가 반영된 삶의 퍼포먼스와 같다. 이 문장에서 두려움은 없다. 남은 시간을 그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내고자’ 하는 결연한 자세가 보인다.
장화백의 글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는 이를 통해, 어떻게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그의 마지막 겨울 코트는 더 이상 다음 겨울을 위한 보관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그를 위한 옷이다. 그리고 그의 예술 역시, 미래에 대한 미완의 약속이 아니라, 오늘을 가장 아름답게 남기는 실천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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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백에게 보내는 편지
장화백,
자네가 암 투병을 시작한 지 벌써 여러 달이 흘렀구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의 충격과 혼란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있네. 이제 3월이니, 의사의 말대로라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전부는 아니라고 믿네. 세상의 모든 일이 정해진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요즘도 가끔 자네가 붓을 들고 있던 모습을 떠올리네. 예전처럼 작품에 몰두하고, 한참 고민하다가도 빙긋이 미소 짓던 순간들. 자네가 얼마나 예술을 사랑했는지, 또 얼마나 깊이 있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네. 자네의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과 철학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였지. 나는 자네의 예술이 자네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네.
오는 5월, 계획한 전시회를 잘 치를 것이라 믿네. 우리가 함께 준비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네. 자네는 늘 마지막이라는 생각 없이 최선을 다했고, 언제나 ‘이번 작품이 최고가 아닐까?’ 하며 스스로를 넘어설 고민을 했지.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네. 마지막이란 생각 없이, 평생 그래왔듯 그저 최선을 다할 것이네. 그러니 나도 믿네. 우리는 이번 전시를 무사히 치를 것이고, 자네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예술가로 기억될 것이네.
물론 나는 자네가 아직 떠날 거라 생각하지 않네. 의사가 말하는 ‘시한부’라는 건 결국 하나의 예측일 뿐이지, 정해진 운명이 아니지.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이는 그 예측을 뛰어넘어 더 오래 살기도 하네. 자네 역시 그럴 것이네. 이미 우리는 자네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알고 있지 않나. 자네는 병마 앞에서도 작품을 계속하고,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네. 그런 자네가 쉽게 쓰러질 거라 생각하지 않네.
자네는 늘 삶을 소중히 여겼지. 비록 ‘마지막 겨울 코트’라는 글에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지만, 나는 그 글을 자네의 ‘마지막 선언’이 아니라, 새로운 다짐으로 받아들이고 싶네. 좋은 것들을 미루지 않고 지금 누리겠다는 다짐, 순간을 소중히 살겠다는 의지. 그러니 나는 이렇게 믿기로 했네. 자네는 여전히, 자네만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고, 5월의 전시회도 우리가 함께 치를 것이며,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는 또 다른 계절을 함께 맞이할 것이네.
혹여라도 힘들 때가 오면, 자네는 스스로에게 한 번 더 물어보길 바라네. 정말 이제 그만 놓아야 하는 순간인가? 아니면, 여전히 살아갈 힘이 남아 있는가? 나는 자네가 후자를 택할 거라 믿네.
장화백, 나는 자네가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라네. 우리는 아직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고, 더 많은 작품을 봐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네. 그러니 부디, 포기하지 말게. 자네는 예술가이기에 앞서, 강한 인간이네. 그리고 나는 자네가 의지로 이 시간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네.
함께 전시를 준비하며,
자네를 응원하는 친구 청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