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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스토리 블라썸도윤 ㅡ 뱃멀미하는 눈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r 06. 2025







                     뱃멀미하는 눈



                                  시인 블라썸 이도윤




소복소복 쌓이는 게
하루 이틀이랴
질리게도 내린다

첫 번째로 다가와야
무지 설렘이건만

백설기를 밥 대신
삼시 세끼 먹어댈 수 없듯이

음력 정월엔 눈이 많이 오기로
찜해놨나 본데
키가 아주 작아 맨 앞에 앉아서

키가 아주 작아 맨 앞에 앉아서

똘망하게 일등만 노렸던 최정열이란

아이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축축하게 훑어놓은 눈을 밟아는 볼까

오늘은 성가심이 따른 눈발 앞에서

혼자의 속삭임을 갖는 것은
이렇게 하얀 세상을
제멋대로 내주진 않겠기에

한 마디라도 말을 붙인다
이번엔 궁금증도 풀어줄
혜안을 갖고 기세등등하게 왔느냐

보기엔 솜털 같아도 하염없이 쌓인

무게감처럼 흔들림 뱃멀미 같은데
훌훌 털고만 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블라썸도윤 시인은 일상의 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삶의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작가다. 그는 자연 현상을 넘어, 그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존재론적 의미를 발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멀미하는 눈 역시 눈[雪]의 이미지 속에서 쌓이고 쌓이는 시간과 감정의 무게, 그리고 그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성찰한다.

이 시에서 눈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소복소복 쌓이는 게 / 하루 이틀이랴 / 질리게도 내린다"는 반복적인 삶의 흐름을 은유한다. 쌓이고 쌓이는 눈처럼, 우리의 삶도 일상적인 반복 속에서 진행된다. 반복이 주는 권태와 피로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기대하고 바라본다.

"첫 번째로 다가와야 / 무지 설렘이건만"이라는 구절은 새로운 경험 앞에서 기대감을 품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지만, 이어지는 "백설기를 밥 대신 / 삼시 세끼 먹어댈 수 없듯이"는 그 기대가 지속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이도윤 시인의 시적 철학은 여기에서 빛난다. 그는 반복 속에서도 삶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안에서 균형을 찾으려 한다.

이 시에서 눈은 기상 현상을 넘어 인간의 기억과 연결된다.
"키가 아주 작아 맨 앞에 앉아서 / 똘망하게 일등만 노렸던 최정열이란 아이"라는 구절은 눈 오는 풍경 속에서 떠오른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고 있다. 그것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과 대비되는 존재로 그려지면서 시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도윤 시인은 회상을 감상적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축축하게 훑어놓은 눈을 밟아는 볼까"라는 질문은 그 아이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을 던지면서, 기억의 흐름이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와의 연결 지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풍경 속에서 시인은 내면의 독백을 시도한다. "오늘은 성가심이 따른 눈발 앞에서 혼자의 속삭임을 갖는 것은 / 이렇게 하얀 세상을 / 제멋대로 내주진 않겠기에"라는 구절은 삶의 무게 앞에서 자기 주체성을 지키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무력한 존재로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해석하고 대화하며 대응하려는 시인의 시적 태도를 나타낸다.

특히 마지막 연에서 "보기엔 솜털 같아도 하염없이 쌓인 무게감처럼 흔들림 뱃멀미 같은데 / 훌훌 털고만 있다"는 구절은 눈이 가진 두 가지 속성을 강조한다. 눈은 가볍고 순수해 보이지만, 쌓이면 무거운 존재가 된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삶의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는 더 단단해질 수도 있지만, 흔들리고 뱃멀미를 느낄 수도 있다.
시인은 결국 "훌훌 털고만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삶을 가볍게 넘기려는 태도를 상징한다.

이도윤 시인의 멀미하는 눈은 반복되는 일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권태, 기억과 현실의 대비,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그는 눈이라는 자연 현상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은유하면서도, 감상적이거나 나약한 태도로 빠지지 않는다.
외려 그는 삶의 무게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훌훌 털어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이는 그의 시 전반에 흐르는 삶의 가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인간이 현실 속에서 무력감에 빠지는 대신, 그것을 받아들이고 견디면서도 자기 주체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그의 미의식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와의 대비 속에서 기억을 되살리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결국 이 작품은 삶의 무게를 인식하면서도, 그 무게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태도를 담아낸다.

이도윤 시인의 시는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내적 성찰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멀미하는 눈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삶을 사유하게 하는 작품으로, 그의 시 세계가 지닌 깊이를 다시금 확인하게 만든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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