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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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그리고 철학
철학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려는 오랜 탐구의 역사다. 가장 처음 던진 질문은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였다. 고대 자연철학은 이를 해명하려 했고, 결국 현대 과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세계의 구조를 탐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앎이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철학은 점점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제자인 달삼은 스승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 철학이란 결국 무엇을 탐구하는 학문인가요?”
스승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철학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노력이지. 처음엔 자연철학에서 출발했어. ‘이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이 그 시작이었지. 그러다 점점 인간 자체에 대한 탐구로 옮겨갔단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인간을 탐구한 철학은 언제부터 등장했나요?”
“그건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된 인문주의에서 찾을 수 있어. 이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에게 앎이란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지. 결국 철학은 ‘구원’이라는 문제로 나아갔단다.”
달삼은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인간 구원이요? 철학이 인간 구원까지 다루었나요?”
스승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장 먼저 인간 구원을 철학적으로 탐구한 건 스토아학파였어. 제논이 창시한 이 학파는 로마 시대까지 이어지며 키케로,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단다. 그들은 세계를 코스모스(cosmos), 즉 질서와 조화로 이루어진 정연한 세계로 보았어.”
“그럼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는다고 생각했나요?”
“스토아학파는 인간을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신적 존재인 우주의 일부로 보았어. 삶이란 흙에서 태어나 생명을 살다가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과정이라는 거야. 그러니 죽음도 소멸이 아니라 신성한 세계로의 귀환일 뿐이라고 여겼지.”
달삼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기독교가 중심이 되었잖아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시간이 흘러 스콜라 철학이 등장했어. 이 철학은 코스모스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보았단다. 그 대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지. 여기서부터 인간의 구원은 인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보았어.”
달삼은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럼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스승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자유 의지가 있긴 하지만, 결국 인간은 신의 선택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여겼지. 선과 악이 분명히 나뉘었고, 악한 자는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로 취급되었어.”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었다면,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이 신의 뜻이 아닌가요?”
스승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 점이 논란이 되었지. 하지만 스콜라 철학자들은 이렇게 말했어. ‘신이 자유 의지를 주었으니 잘못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러나 인간이 고통 속에 있을 때 신이 나타난 적은 없었지.”
달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서 결국 르네상스와 근대 철학이 등장한 거군요.”
“그렇지. 기독교가 전부였던 중세 시대가 저물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중요한 가치로 떠올랐어. 칸트는 인간이 스스로 이성을 통해 도덕법을 세울 수 있다고 보았고,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외치며 이성을 철학의 중심에 놓았지.”
달삼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이성을 신봉하던 철학도 결국 한계를 맞았죠?”
스승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맞아. 바로 그때 등장한 사람이 니체야. 그는 기독교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었다며 반기를 들었지. 인간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어. 그리고 인생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반복되는 무의미한 과정이라 보았단다.”
스승은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제자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 ‘네 운명을 사랑하라.’”
달삼은 깊이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승님은 인간 구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승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인간 구원은 우리에게 가장 궁극적인 문제야.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그에 대한 불안을 품고 살아가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야.”
달삼은 놀란 듯 되물었다.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세가 있든 없든 그것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현재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야 해. 그리고 서로 사랑해야 하지. 지나간 과거에 미련을 두거나 오지도 않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단다.”
달삼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우리는 오늘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네요.”
스승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찾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구원일지도 모른단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