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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무쇠 밥주걱

김왕식









어머니의 무쇠 밥주걱





한평생 부엌 한구석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온 무쇠 밥주걱. 어머니의 손에 쥐어질 때마다 가마솥 밥을 퍼내고, 뒤집고, 골고루 섞으며 가족들의 식탁을 책임져 왔다. 밥 한 그릇이 곧 생명인 시절, 어머니는 단 한 끼도 소홀히 넘긴 적 없었다. 자식들 허기질까 봐, 남편 배곯까 봐, 새벽같이 일어나 솥을 걸고 불을 지폈다. 쌀 한 톨, 보리 한 톨 허투루 여기지 않고 정성껏 씻어 무쇠솥에 안쳤다.

가마솥 밥이 다 되면, 어머니는 언제나 그 밥주걱을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뜨거운 밥을 한 번 뒤집고, 퍼서 그릇에 담았다. 밥주걱질은 힘이 들었다. 무쇠라서 무거웠고, 쌀밥이 귀한 시절에는 보리밥을 퍼내야 했는데, 보리밥은 금세 엉겨 붙어 한 번 푸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한숨 한 번 쉬지 않고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냈다. 배고픈 가족들을 위해, 손끝에 힘을 주고 무쇠 밥주걱을 움직였다.

그 밥주걱이 세월을 견디고 견디더니, 마침내 반쪽이 되었다. 무쇠로 만든 것이라 해서 영원할 것 같았지만, 오랜 시간밥을 푸고, 물을 맞고, 불을 견디며 닳고 닳았다. 그렇게 단단하던 것이 어느 순간 힘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마치 어머니의 손마디처럼, 몸처럼, 세월 앞에 조금씩 깎이고 깎여 어느새 주름지고 야위어 갔다.

무쇠밥주걱이 반쪽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그걸 한참 바라보았다. 처음엔 허전했을 것이다. 손에 익은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것이. 그보다 더 깊은 감정이 스며들었다. 이젠 더 이상 보리밥을 떠낼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이랄까, 아니면 너무 늦게야 알게 된 서글픔이었을까.

가난했던 시절, 보리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날들이 있었다. 무쇠 밥주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긴 세월, 어머니는 가마솥과 함께 살아왔다. 가족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자신은 늘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었고, 손바닥보다도 작은 밥 한 덩이에 마음을 채우며 살았다. 이제는 모든 것이 풍족해졌지만, 어머니가 흘려온 시간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었다.

무쇠 밥주걱은 더 이상 쓰지 못할 만큼 닳아버렸지만, 그 안에는 어머니의 시간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손에 닿았던 수많은 온기,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떠내던 무게, 그리고 밥 한 그릇에 담겼던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그 모든 것이 닳고 닳아 반 조각이 되어도, 어머니의 삶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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