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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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도미에의 삼등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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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도미에의 삼등 열차에서 세상을 바라보다
청람 김왕식
달삼은 오래된 미술관 한구석에 걸린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 그림… 뭔가 익숙한 느낌이에요. 하지만 낯설기도 해요."
스승은 미소 지으며 그림을 함께 바라보았다. 캔버스 위에는 좁은 기차 칸에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젊은 여인은 품 안의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었고, 할머니는 바구니를 두 손으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옆에선 어린 손자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희미한 황혼의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이들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이 그림은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 열차란다. 1862년에 그려졌지."
"1862년이라면…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발표한 해 아닌가요?"
"그래. 시대가 같지.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인간의 비참함과 부조리를 그렸어. 굶주린 아이를 위해 빵을 훔쳤던 장 발장, 자신의 몸을 팔아서라도 딸을 살리려 했던 팡틴, 그 고통 속에서 보호받아야 할 코제트 같은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도미에는 그걸 그림으로 보여주었지. 이 삼등 열차 속 사람들을 보면 위고가 소설에서 그려낸 인물들이 떠오르지 않니?"
달삼은 다시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러네요. 이들은 가난하지만 서로를 보살피고 있어요. 하지만 뒷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피로와 불안이 가득해요. 어쩌면 체념한 듯 보이기도 하고요."
"바로 그거란다, 달삼아. 이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지. 도미에는 삼등 열차뿐만 아니라 일등 열차와 이등 열차도 그렸어. 결국 미완성으로 남은 삼등 열차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 그 이유가 뭔지 아니?"
달삼은 그림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공감을 사기 때문 아닐까요? 누구나 약자가 될 수 있고, 힘든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스승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실존의 비참함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이지. 이 그림이 우리를 사로잡는 이유는 단순한 연민 때문이 아니야. 그 속에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지. 도미에는 화려한 궁전이나 성공한 사람을 그리지 않았어. 남루한 옷을 입고 감자로 끼니를 때우며 살아가는 이들을 그렸지. 그들에게서 가장 인간적인 빛이 나오는 거야."
달삼은 한동안 말없이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스승님, 도미에는… 부유한 사람이 아니었나요? 어떻게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스승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란다, 도미에 자신도 가난했어.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석판화를 찍어야 했지. 게다가 신랄한 정치 풍자화로 감옥에도 갇혔어. 그는 가진 자들의 편이 아니라, 항상 약자와 희생자의 편에 서 있었단다."
달삼은 깊이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시몬 베유가 그런 말을 했었죠? '이 세상은 물질의 법칙과 이성적 인간의 자율성으로 구성된다. 신은 왕좌를 포기하고 오직 거지로서만 이 세상에 들어올 수 있다.'라고요."
스승은 미소 지으며 달삼의 어깨를 두드렸다.
"맞다. 가장 낮은 곳에서 빛나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지.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지만, 오래도록 기억하는 건 가난 속에서도 시대를 기록한 시인과 화가들이야. 예술이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달삼은 그림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중요한 건, 빛나는 자리가 아니라… 빛을 바라보는 마음이겠죠."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