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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왕리 앞바다의 봄날

김왕식





이 글을

동심으로

사는

박 선생님께 바친다






을왕리 앞바다의 봄날




봄기운이 부드럽게 스며든 을왕리 앞바다.
바람마저 온기를 머금어 내 어깨를 스친다.
코트를 벗어 가볍게 걸치고, 바짓단을 접어 올린다.
차가운 듯 따스한 물살이 발끝을 감싼다.
맑고 옅은 파도 위로 걸음을 내디디니
바다는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온 듯
고요한 품으로 나를 안아준다.

갈매기들은 날다 지쳐 하늘을 쉬고,
저무는 해는 바다를 감싸 안는다.
은빛 물결이 석양을 머금어 찬란한 윤슬을 띠운다.
눈부신 물결 속으로 시선을 던지면,
나의 굴곡진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흐른다.
수없이 꺾였던 길들, 쌓이고 쌓인 아픔들,
그 모든 것이 바다의 품속에서 잔물결이 되어 흩어진다.

내 안에 깊숙이 파묻혔던 것,
언젠가부터 짙은 어둠이 되어 나를 조여온 것,
그것마저도 오늘은 바닷물결과 함께 흘러간다.
거리의 악사가 켜는 기타 선율 위로
나의 고통이 튕겨 나와 물결 속으로 녹아든다.
마침내 바다는 그것을 삼키고,
윤슬 속에서 부서져 흩어지게 한다.
더 이상 내 안에 머물 수 없는 것들,
그것들은 물살이 되어 바다 저편으로 사라진다.

개운하다.
시원하다.
바다의 품속에서 토해낸 것들 덕분일까.
이제는 새살이 돋아나듯
가슴속에 작은 새싹이 움튼다.
아로새긴 새 사랑이,
어느덧

따스한 봄의 기운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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