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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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이별, 그리고 백석의 시
청람 김왕식
천재 시인 백석(白石), 그의 시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지녔다. 그러나 그의 시만큼이나 깊이 새겨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가 사랑했던 여인, 자야(子夜)와의 이야기다. 본명은 기생 김진향이었던 자야는 백석의 삶에서 가장 강렬한 사랑이었으며, 그의 시 속에서 아련히 스며든 존재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백석은 북으로 떠나기 전, 경성에서 자야를 만났다. 그녀는 단순한 기생이 아니었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문학을 사랑하며, 백석의 세계를 깊이 이해한 여인이었다. 백석 또한 그녀를 단순한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가 사랑한 것은 단지 한 여인이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시간과 공간, 그 모든 것들이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겨울밤의 흰 눈처럼, 그들의 사랑은 조용히 쌓였다. 사랑은 찬란했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백석은 북으로 떠났다. 그가 자야를 뒤로한 채 떠났는지, 아니면 의도치 않게 이별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가 끝내 남쪽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타샤를 사랑해서 나는 행복하겠네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요히 와 있다."
자야는 기다렸다. 40년 동안, 단 한 번도 그의 부재를 의심하지 않고, 그의 귀환을 기도했다. 서울의 한 호텔에서 고고한 여주인으로 살아가면서도,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백석이 있었다. 그가 돌아오리라 믿으며, 그의 시를 품고 살아갔다. 그러나 흰 당나귀를 타고 돌아올 사람은 영영 오지 않았다.
백석이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시는 점점 더 공식적이고 정치적인 색채를 띠었고, 자유로운 서정이 사라졌다. 한때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했던’ 시인은 이제 사라지고, 체제에 순응한 시인으로 남았다. 시를 통해 사랑을 노래하던 백석은 결국 노동자로 전락했고, 시인으로서의 자유를 잃었다. 그의 시는 혁명의 도구가 되었고, 더 이상 사랑도 기다림도 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그는 문학에서 멀어졌고, 시를 써도 발표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평생을 외롭게 살다 쓸쓸히 생을 마쳤다.
자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사랑이 끝나고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기생의 삶을 뛰어넘어 사업가로 성공했고, 대원각이라는 큰 요정(料亭)을 운영하며 경성에서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백석이 있었다.
"그의 흰 당나귀는 달빛 속에서 여전히 조용히 울고 있었을까 그를 기다리던 그녀의 눈썹 위에도 흰 눈이 내려 쌓였을까."
백석이 돌아오지 못하자,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오랜 세월 쌓아온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1995년,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이 담긴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기증하며 절로 바꾸었다. 그렇게 대원각은 '길상사'가 되었다. 세속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자야는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 피어난 운명적인 인연이었고, 이별이었으며, 기다림이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자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사랑을 잃고도 그녀는 사랑을 지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백석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완전한 해후를 이루지 못했지만, 백석의 시 속에서, 그리고 자야가 남긴 길상사 속에서, 그들은 영원히 함께였다.
1999년 11월 14 일
자야가 세상을 뜬 날
청람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