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의 새벽

김왕식






아버지의 새벽




신새벽 인력시장, 거리는 어둡고 바람은 차다.
드럼통 속 불길이 흔들리며, 사람들의 얼굴에 희미한 빛을 남긴다.
아버지는 두 손을 불에 가져가 녹이며 기다린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길, 누군가 오늘 하루의 일거리를 주길.

지난겨울, 계단을 오르다 발이 미끄러졌다.
허리가 꺾였고, 삶도 무너졌다.
움켜쥘 힘조차 사라졌고,
일터도 더 이상 그를 부르지 않았다.

며칠째,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한 사람, 두 사람 지나가고,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았지만,
아버지를 부르는 이는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기억이 흐려진 어머니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아내는 "돈 벌어올게" 그 한마디를 남기고
이 년째 소식이 없다.

그 사이, 막둥이는 훌쩍 자랐다.
낡은 운동화가 더는 발을 감싸지 못한다.
"아빠, 새 운동화 사줘!"
해맑은 얼굴로 손을 잡아당긴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 일터로 향한다.
오폐수가 가득 찬 하수구,
코를 찌르는 냄새, 튀어 오르는 오물.

그러나 멈출 수 없다.
굳은살 배긴 손에 다시 힘을 주고,
삽을 들어 오물을 퍼낸다.
오늘 벌어야, 내일이 있다.

온몸이 냄새로 뒤덮이고,
허리는 아파와도 참아야 한다.
손바닥이 갈라지고 피가 배어 나와도,
아들의 운동화 한 켤레가 마음을 붙든다.

해가 지고, 일이 끝났다.
작은 신발가게 앞에 멈춰 선다.
유리창 너머 가지런히 놓인 운동화들,
그중에서 가장 튼튼한 신발을 고른다.

상자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자는 막둥이 머리맡에 살며시 놓아둔다.
어느 날, 이 아이가 크면 알까?
아버지가 새벽을 지켜냈던 이유를.

다시 새벽이 밝아온다.
아버지는 또다시 거리로 나선다.
언젠가, 더는 손을 녹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ㅡ 청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달빛에 젖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