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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는가? ㅡ T. S.

김왕식 ㅡ — T. S. Eliot, The Waste Land










누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는가?


청람





>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 T. S. Eliot, The Waste Land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을까?

T. S. 엘리엇은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선언했다. 겨울의 차가운 무덤 속에서 안식을 구하던 이들에게, 4월의 생명력은 오히려 잔혹했다. 죽은 줄 알았던 것이 다시 살아나고, 묻어둔 기억이 싹을 틔우며, 겨우 덮어둔 상처가 봄바람에 드러난다. 하지만 4월이 오기도 전에, 그 잔인한 생명의 기운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며칠 전 내린 봄비가 대지를 적셨다. 차가운 겨울비와는 다르게, 이 비는 생명을 일깨운다. 마른 가지 끝에는 연둣빛 새순이 맺히고, 길가의 잡초조차도 흙을 뚫고 올라오려 몸부림친다.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늦겨울에 머물러 있는데, 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밀려온다. 이제 잔인한 달은 4월이 아니라 3월이다.

겨울이여, 잠시만 더!

사람은 익숙한 것에 머물고 싶어 한다. 차가운 공기의 차분함, 두꺼운 외투 속의 포근함, 게으름을 허락하는 늦잠의 유혹. 하지만 자연은 그런 안일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3월의 비가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움츠렸던 것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기다렸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그 변화는 결코 부드럽지 않다. 찬 바람이 남아 있는데도, 봄은 무심하게 밀려든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직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것들에게, 봄은 억지로 눈을 뜨게 한다. 움켜쥔 손을 펴게 하고, 한 걸음을 내딛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계절이 아니라 변화다.

변화는 언제나 이르다

우리는 언제나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변화와 마주한다. 익숙했던 것들을 떠나야 하는 순간은 늘 갑작스럽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변화가 밀어붙일 때 움직일 수밖에 없다. 4월이 아니라, 이제는 3월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어느새 봄이 와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겨울의 흔적을 부수고, 새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흙이 젖는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그 흐름을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는가?

이미 3월에 봄비가 내려, 겨울을 밀어내고 있다.
싹은 흙을 뚫고, 바람은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잠든 것들은 눈을 뜨고, 머뭇거리던 것들은 움직인다.
이제, 계절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다.

아직 겨울을 더 품고 싶다면,
손을 뻗어 보아라.
그러나 봄은 이미
네 손끝을 스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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