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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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리(西霞里)(사마루)
안봉근
경안천 유유히 흘러
자욱한 아침 안개 쉬어가고
마을 형체가 누각을 닮아
"사마루라' 하는 서하리
무갑산 정기 품은 장승이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며
신익희 선생 생가와 마을회관,
100여 호가 가슴을 맞대고
토마토와 채소를 경작하며
이야기 꽃 피우는 마을
겨울철새 큰고니, 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가 물길에 노닐며
자연과 조화로운 천년의 삶
정겹고 인심 좋은 서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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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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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 작가의 시 '서하리'는 지역의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삶의 가치관과 미의식이 깊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공동체적 삶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시의 첫머리에서 경안천의 유유한 흐름과 아침안개가 쉬어가는 장면을 제시하며, 자연이 스스로 머물고 싶어 하는 공간으로 서하리를 묘사한다. 이는 지리적 위치를 넘어, 삶의 터전이 가진 안정감과 포근함을 암시한다. 특히 ‘마을 형체가 누각을 닮아’라는 표현에서 자연과 건축, 인간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적 미학이 드러난다.
작가는 무갑산의 정기를 품은 장승을 통해 마을의 역사성과 정신적 중심을 강조한다. 장승이 상징하는 평화와 번영의 기원은 소망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해 온 오랜 신념이자 가치관이다. 또한, 신익희 선생의 생가와 마을회관, 100여 호의 가옥들이 ‘가슴을 맞대고’ 있다는 표현은 마을 사람들이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공동체의 정을 함축한다.
이어지는 연에서는 토마토와 채소를 경작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철새들이 물길에 노니는 장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이는 작가가 중요하게 여기는 생태적 가치와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며, 자연 속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인간의 소박한 행복을 찬미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마지막 구절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천년의 삶’이라는 표현을 통해, 서하리는 한 시절의 거처가 아니라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터전임을 강조한다. 이는 작가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실현해야 할 가치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 전체에 흐르는 따뜻한 시선과 서정성은 마을 공동체와 자연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서하리'는 안봉근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 즉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적 삶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시인은 특정한 장소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서하리를 통해 제시하며, 정감 있고 따뜻한 필치로 이를 구현하고 있다.
이는 그저 풍경 묘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역사와 현재가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미의식을 보여준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