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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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이야기
시인 淸水 강문규
촛농이 울고 있는
깊어가는 겨울밤
화롯불 둘러앉아
군고구마 익어갈 때
목이 메일라
울 엄마 시원한 동치미 한 사발 떠오시네
늦가을 마루 끝 따 놓은
대봉은 빨갛게 홍시 되어
긴긴밤 달래주고
엄마의 포근한 이야기는 어느덧
자장가 되어 눈꺼풀 내려
솜이블은 나를 감싼다
새벽을 깨우는
장닭들은 높은 돌담장에 올라
일출을 목청껏 알린다
처마 끝 고드름은
말없이 눈물짓고
말없이 말라가는
시래기는 무얼 생각할까
얼음 밑 졸졸 흐르는
깨끗한 계곡물 보니
나도
맑은 삶이 되고 싶다
말없이 흐르는 물처럼
나도 흘러가는 세월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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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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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 강문규 시인의 시 '겨울밤 이야기'는 따뜻한 겨울날의 정경 속에 작가 특유의 인생철학과 미의식이 오롯이 배어 있다. 시인은 차가운 겨울밤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손맛과 정을 불러일으키며, 자연과 삶의 순환, 그리고 그 안에 깃든 겸허한 수용의 태도를 시심 깊게 그려낸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말없이 흐르는 물’처럼 살아가겠다는 맑은 다짐이다.
시의 초입은 “촛농이 울고 있는 깊어가는 겨울밤”이라는 감각적 이미지로 겨울밤의 정적과 외로움을 환기시키고, 이어 화롯불, 군고구마, 동치미 같은 정감 어린 소재들로 따스한 공동체의 풍경을 구성한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그 속에 깃든 인간애와 삶의 기본적인 따뜻함을 강조하는 미의식이다.
특히 ‘울멈마’라는 방언적 표현은 시인의 고향 정서와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반부에서는 붉게 익은 대봉과 자장가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사랑이 부드러운 리듬감과 함께 전개된다. 이는 단순한 유년 시절의 그리움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이루는 사랑과 안식을 상징한다.
마치 자연이 순리대로 익고 스러지듯, 시인의 내면 또한 그러한 섭리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후반부로 가면 새벽을 깨우는 장닭, 말없이 눈물짓는 고드름, 그리고 침묵 속에 말라가는 시래기까지 자연의 작은 것들이 하나같이 시인의 성찰의 대상이 된다.
청수 강문규 시인은 언제나 ‘말없이’라는 태도를 시적 세계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말없이 눈물짓는’, ‘말없이 말라가는’, ‘말없이 흐르는’이라는 반복적 표현은 외부로 드러내지 않지만 내면의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강조한다.
이는 시인의 삶의 철학인 ‘겸허함’과 ‘맑음’으로 집약된다. 시인은 물처럼, 자연처럼 흐르며 살아가고자 한다. 이는 어떤 영웅적 이상이나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일상 속 평범한 순간들을 통해 드러나는 참된 삶의 태도다.
요컨대, '겨울밤 이야기'는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본질이자 미적 가치인 ‘맑고 겸허한 존재로 살아가기’가 정제된 언어와 따뜻한 이미지로 구현된 작품이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고요히 흘러가려는 그의 철학은 이 시를 통해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과 위안을 전한다.
청수 강문규 시인의 시세계는 꾸밈없고 자연스러우며, 바로 그 점에서 더욱 숭고하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