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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재관에게

김왕식







내 친구 재관에게




안최호




오늘 아침, 남한산성 중턱 검복리란 마을에서 짐을 내렸네.
서울 광운공대 현장에서 자재를 싣고,
멀리 태백으로 향했다가
경북 봉화로, 거기선 트랙터 한 대를 싣고
다시 충북 음성으로 내달렸지.

그 바쁜 길 위에서
오랜만에 자네와 통화했네.
참 반가웠어.
청람문학방에서 마주한 우리,
글로 다시 숨을 나누게 될 줄이야.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
이쯤 되면 서로가 마음으로 통하지 않으면
오래 함께 걷기 어려운 법인데,
자네는 늘 신뢰와 진심을 잊지 않던 사람이었지.
말보다 먼저 마음이 앞서던 사람,
친구들 사이에 따뜻한 질서를 세우던 이,
맑은 눈빛 속에 고요한 생각이 흐르던 그런 자네였지.

함께한 육십 년 세월,
물처럼 흘렀지만 돌아보면
매 순간이 값지고,
이름만 불러도 웃음 나는 그런 사이였네.
어깨 한번 툭 치면 말없이 위로가 되던,
그런 친구였지.

이제 우리는 문우로 다시 마주했네.
청람문학회라는 새 마당,
인생의 이모작을 함께 걸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빛나는 일이겠는가.

이제는 삶이 남긴 이야기들을
글로 옮기며
자네와 함께,
정직한 집 한 채 지어가고 싶네.
청람이라는 이름 아래서
깊고, 오래도록 말일세.

오랜만의 통화,
참 고맙고 따뜻했네.
길 위에서도 마음만은 늘
자네 곁에 머무르길 바라네.




화물운전사
안최호 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최호 시인의 '내 친구 재관에게'는 우정의 편지를 넘어, 삶을 운전해 온 한 노동자의 묵직한 인생철학과 문학적 미의식이 깊게 스며 있는 수작이다. 이 작품은 삶의 노정과 예술의 마당이 만나는 지점을 따뜻하고도 정직하게 포착하고 있다.

작가는 화물운전사로서의 일상을 담담히 묘사하며 시작한다. 남한산성, 태백, 봉화, 음성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여정은 단지 화물차의 궤적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궤도이기도 하다. 거친 도로 위를 달리는 노동자의 삶 속에서도, 그는 우정을 기억하고 예술의 언저리를 품는다.
이는 단순한 생계 너머로 존재하는 정신적 가치, 즉 인간으로서의 품격과 기억의 가치를 지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시인은 '신뢰와 진심'을 우정의 기둥으로 삼는다. 그가 말하는 친구는 '맑은 눈빛 속에 고요한 생각이 흐르던' 사람이며, 말보다 마음이 앞서는 사람이다.
이는 곧 작가 자신이 그러한 사람을 알아보고, 또 그와 같은 결을 지닌 인물임을 반증한다. 이러한 인식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가치철학을 드러낸다. 진심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에게 있어 문학 이전의 문학이다.

작품의 미의식은 단아하면서도 강한 서정에서 비롯된다. 운전 중간의 통화라는 일상의 한 조각이 문학으로 승화되고, 평범한 언어 속에 시심이 자연스럽게 배어든다. 그는 거창한 수사나 기교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일세'라는 담백한 종결어미에서처럼, 익숙하고 따뜻한 말투를 통해 정서를 전한다.
그 정서는 시간과 신뢰, 우정, 노동, 그리고 문학이라는 삶의 층위를 잇는 실마리가 된다.

또한 “청람문학회”를 통한 ‘인생의 이모작’은 단지 취미 활동의 개념을 넘어선다. 이는 남은 인생을 ‘정직한 집 한 채’ 짓듯 살고자 하는 의지이며, 문학을 도구가 아닌 동반자로 삼겠다는 다짐이다.
‘문우(文友)’로 다시 만났다는 표현은 글이 우정의 두 번째 무대가 되었음을 시사하고, 이는 예술이 사람을 다시 잇는 힘을 가진다는 미의식을 반영한다.

요컨대, 이 작품은 작가 안최호의 삶 그 자체가 문학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노동을 수치화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노동 속에 숨은 감정과 관계, 기억을 따뜻하게 기록한다. 삶의 진실함을 지키는 것이 그의 철학이며, 그 철학은 가장 인간적인 언어로 구현된다. 이 글은 결국 한 줄 시처럼 남는다.

"길 위에서도 마음만은 늘 자네 곁에 머무르길 바라네."

삶과 문학이 만나는 자리에서,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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