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우穀雨와 입하立夏 사이, 생명의 문턱에 서서

김왕식






곡우穀雨와 입하立夏 사이, 생명의 문턱에 서서

청람 김왕식




곡우는 봄비가 내려 곡식을 키우는 절기다. 겨울의 흔적을 지우며 대지는 부드럽게 깨어난다. 볍씨를 담그고 밭을 가는 손길, 나무를 심는 숨결 속에 인간과 자연은 다시 악수한다. 곡우의 비는 단순한 촉촉함이 아니다. 생명의 약속이며, 때로는 땅을 시험하는 세찬 물살이다.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절박함 속에서도 미소를 짓는다.

곡우를 지나 풀빛은 더욱 짙어지고, 개울은 다시 노래한다. 사람들은 새벽을 깨우며 씨를 뿌리고, 흙을 어루만지며 살아 있는 시간을 느낀다. 절기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으로 닿는, 살아 숨 쉬는 진짜 시간이다.

곡우와 입하 사이, 농촌은 숨 쉬는 듯한 풍경을 펼친다. 새벽 이슬 맺힌 밭머리, 모판을 나르는 어르신들의 굽은 등, 첨벙이는 논물 속에 심어지는 생명들. 감자꽃이 피고, 청개구리가 튀어오르고, 까치와 꾀꼬리가 들판을 가로지른다. 작은 장터에는 모종을 팔러 온 사람들이 북적이고, 보리밭은 연초록 물결을 일으킨다. 이 짧은 시기에야말로, 농촌은 가장 살아 있고 가장 사람의 손길을 닮아 있다.

입하는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다. 바람은 약간의 뜨거움을 머금고, 햇살은 본격적인 생명의 불을 지핀다.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를 시작하며, 삶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땅과 함께 숨 쉬며, 땀과 함께 배우는 시간. 절기는 인간의 손에도 흔적을 남긴다. 등이 타고 손바닥이 거칠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표식이다.

곡우와 입하 사이, 생명은 방향을 정하고, 인간은 그 곁을 지킨다. 절기는 때를 잊지 말라 가르치고, 기다림과 움직임을 조화시키라 속삭인다. 곡우의 비는 마음을 젖게 하고, 입하의 햇살은 새로운 길을 비춘다. "너도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가?" 절기가 던지는 질문 앞에 우리는 선다.

비록 도시는 절기를 잊었을지라도, 대지는 묵묵히 순환한다. 지금도 곡우의 비는 내리고, 입하의 햇살은 쏟아진다. 생명의 무대는 다시 열리고 있다. 그리고 그 무대를 걷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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