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은장도 아래 맨살
시인 변희자
여름밤 검은 숨결 속
푸른 별이 살며시 펼친
빛의 조각보 위에
초승달 하나
은장도처럼 매달려 있다
개구리는 제 몸보다 큰 물비늘을 찢으며
풀잎에 숨겨둔 시간을
조심스레 긁어대지만
그건 어쩌면
맨살을 더듬는 일
말하지 못한 속내를
가만히 접는 일
초승달은 마음을 잇는 곡선으로
한숨을 빗질하다
이름을 불러보지만
말 대신 흘러나온
긴 숨 하나가
은빛 어둠을 타고 번진다
울음을 듣고 있는지
잊은 척하고 있는지
말없는 틈새 속
고요한 빛으로 번져
젖어든 노래를 타고 흐른다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ㅡ
변희자 시인의 '은장도 아래 맨살'은 날이 선 침묵의 언어로 내면의 결을 더듬어가는 시이다. 작가는 빛과 어둠, 소리와 침묵, 살결과 은장도 같은 감각적 대조를 통해 인간 내면의 섬세한 상처와 그것을 감싸는 애틋한 연민을 그려낸다.
시의 중심에는 초승달이라는 이미지가 자리한다. 그것은 밤하늘에 걸린 은장도처럼 날카롭고 아름답다. 이 장면은 작가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
—즉, 아름다움은 늘 상처와 긴밀히 맞닿아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개구리의 움직임, 물비늘, 풀잎, 그리고 숨겨둔 시간까지 모든 표현은 조심스럽고 은근하다.
이는 단지 자연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감정의 결을 한 올 한 올 펴는 정서적 행위로 읽힌다.
"맨살을 더듬는 일", "말하지 못한 속내", "한숨을 빗질하다" 같은 구절은 시인이 삶을 직접 말하지 않고, 묵언의 몸짓과 상징을 통해 전달하려는 존재 철학을 보여준다. 그는 삶의 진실은 언어 바깥에 존재하며, 그것을 짚어내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에서 이뤄진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결국 "말 대신 흘러나온 긴 숨 하나"가 시의 핵심 감정선이다. 억제된 감정이 빛과 어둠의 틈새로 번져나가는 그 순간, 시는 고요히 우는 노래가 된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미의식은 절제와 여백에 있다. 한 줄의 이미지에 담긴 정서는 무겁고 절실하지만, 표현은 정제되어 있으며 그 무엇도 과장되지 않는다.
이 섬세한 균형감각이 바로 변희자 시인의 시 세계가 지닌 고유한 미덕이다. 삶의 무게를 가벼운 듯 내던지되, 그 안에 고인 울음을 듣게 하는 것. 이것이 그의 시가 보여주는 미의 철학이며, 고요한 울림이다.
요컨대, 변희자 시인의 삶의 가치는, 언어로 드러내지 못한 마음을 온몸으로 듣고, 한 조각 빛처럼 꺼내어 노래하는 데 있다. 시인은 우리로 은장도 아래의 맨살'—즉, 가장 여린 진실과 마주하게 한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