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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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찾는 세계는
시인 노유정
새가
그리움 물고 와
창들에 앉았다가 달아났다
오래전 이야기에
문틈으로 추억이 새어난다
봄의 시각에
땅 밟던 어느 날
산등성이에는
동동주에 취한 무늬
파전이 맛났다
그 해 그 시절은
대단한 꿈이 펼쳐져
모두가 황홀했는데
이제 남은 상흔 따라
추억이 숨어있는 산길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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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노유정 시인의 '새가 찾는 세계는'은 이민과 귀국,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삶의 결로부터 피어난 시적 편린이자, 기억의 산등성이를 더듬는 서정적 노정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새'라는 상징을 통해 자유와 회귀, 그리고 잃어버린 시간의 그리움을 투명하게 엮어낸다. 새가 잠시 머물렀다 날아가는 장면은 떠남과 돌아옴, 혹은 스쳐가는 인연과 다름 아닌 자아의 궤적을 함축한다.
“그리움 물고 와 / 창들에 않았다가 달아났다”는 구절은 이민자로서의 삶을 고스란히 내포하며, 정착하지 못한 정서의 무게와 다시 떠나야 하는 운명을 담담히 보여준다. 그리움은 머물기보다 떠남으로 완성되며, 그로 인해 생긴 결핍이 곧 추억의 문틈으로 새어 나온다. ‘문틈’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정서적 경계선이자, 내면으로 향하는 창이다.
“산등성이에는 / 동동주에 취한 무늬 / 파전이 맛났다”는 대목은 단순한 식문화의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온기와 공동체의 기억, 꿈을 꾸던 시절의 환희를 배경 삼아 과거를 미학적으로 복원하는 장치다.
이 회상은 구체적인 감각의 재현을 통해 그리움이 단순한 감상이 아닌 생생한 삶의 일면임을 증명한다.
시인이 말하는 “그 해 그 시절은 / 대단한 꿈이 펼쳐져 / 모두가 황홀했는데”라는 진술은, 청춘과 이상, 공동의 열정이 격렬히 불타올랐던 시절에 대한 찬가이며, 그 열정이 사라진 오늘의 고요와 절묘한 대조를 이루며 독자에게 정서적 공명을 일으킨다.
노유정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은 결국 '기억의 품격'과 '그리움의 존엄'에 있다. 그는 이민이라는 이질의 환경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추억과 현실 사이의 틈에서 길어 올린 정수를 시로 다듬었다. 정착하지 못한 삶의 여백을 ‘시’라는 방식으로 정박시키고, 그 언어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며, 인간적인 연민과 희망을 동반한 ‘귀환의 미학’을 성취했다.
작품의 미의식은 단정하고 조용하다. 과장을 피하고, 지나친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감각의 은유와 정서의 흐름이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삶과 문학이 동행하는 시인의 진실한 태도를 드러낸다.
요컨대, 노유정 시인의 시는 ‘떠난 자의 시학’이자 ‘돌아온 자의 철학’이며, 그 안에서 시인은 단지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살아 숨 쉬는 기억의 진실을 시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고요하지만 단단하고,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이는 진정한 중견 시인이 갖는 시적 경륜이자, 한국 현대시가 지녀야 할 격조 높은 품성이라 할 것이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