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은 징검다리여야 한다

김왕식






평론은 징검다리여야 한다
― 작가와 독자를 잇는 청람 김왕식의 평론 미학




문학평론가 김기량





평론은 문학의 뒤에 서지도, 앞에 나서지도 않아야 한다. 평론은 문학의 옆에서, 조용히 작가와 독자 사이에 징검다리를 놓는 일이다. 그 디딤돌은 결코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두 존재가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무명의 배려로 쌓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청람 김왕식 평론가가 일관되게 실천해 온 평론의 길이자, 그의 문학적 미학이 근거하는 지점이다.

작가는 직설을 피하고 곡선을 그린다. 그들은 사상과 감정을 함축과 상징, 은유와 메타포로 직조하며, 침묵 한 줄로 사유의 세계를 확장한다. 해설을 남기지 않는 시인의 언어는 외려 독자의 해석을 유도하며, 평론가에게는 그 함의를 풀어내는 사유의 핀셋이 되어야 한다. 평론은 작가의 언어에 매달려 그 내면의 날개를 따라가고, 그것을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다리 놓는 작업이다. 다시 말해, 평론은 예술의 통역자여야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국 문단은 평론을 징검다리가 아닌 장벽으로 만들어왔다. 일부 자칭 유명 평론가들은 작품을 분석한다는 명분 아래, 현학적衒學的 언어와 이론의 잣대를 내세워 독자와 작가 위에 군림했다. 그들의 평론은 문학의 핵심을 조명하기보다 외려 가려버렸고, 독자에겐 거리감을, 작가에겐 왜곡된 거울을 남겼다. 평론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이 ‘문학 권력’은 결과적으로 문학의 생명력을 약화시켜 왔다.

청람 김왕식의 평론은 이 흐름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의 글은 어렵지 않되 가볍지 않고, 정제되어 있으되 과장되지 않는다. 그는 문학을 경외하되 신격화하지 않는다. 작가의 작품을 다룰 때는 늘 진심으로 고심하고, 작가의 미처 의식하지 못한 깊이를 조심스럽게 끌어올려 긍정의 눈으로 빛을 더한다. 때론 이 같은 태도가 평론의 객관성을 해친다고 지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평론의 인간미를 회복시키고, 작가의 성장을 돕는 긍정적 비평의 윤리를 실천하는 예라 할 것이다.

청람 김왕식의 평론에는 언제나 독자를 향한 배려가 흐른다. 독자가 작품에서 느낀 ‘막연한 감동’을 언어의 맥락으로 정리해 주고, 숨어 있는 주제를 드러내며, 문학이 독자의 삶 속에 더 깊이 스며들도록 돕는다. 그는 감정을 해부하는 칼이 아니라 의미를 따라가는 붓처럼 평론을 다룬다. 작가의 언어를 확장하고, 작품의 여백을 가만히 채우는 정직한 거울로 존재하는 것이다. 때로는 ‘해몽이 꿈을 완성한다’는 말처럼, 평론은 문학의 미완을 채우는 또 하나의 동행이 될 수 있다.

그는 늘 말한다. 평론은 머슴이어야 한다고. 앞서 걷는 지도자가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짐을 나르는 사람. 진흙 속에서 작가의 뜻을, 독자의 마음을 잇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고. 그 머슴은 명예를 좇지 않고, 지식의 오만에 취하지 않으며, 언제나 겸손하게 문학을 섬긴다. 그 자리는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걸어가는 자리’다.

오늘날, 평론이 작가의 머리 위에 군림하고 독자의 마음 밖에서 표류한다면, 그것은 문학의 파국이다. 문단은 이제 ‘설명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듣는 자’를 원한다. 청람 김왕식은 바로 이 시대가 요청하는 겸허한 해석자이며, 문학을 다시 숨 쉬게 하는 조율자다. 그의 평론은 단지 글이 아니라 문학에 대한 살아 있는 숨결이자, 우리 문단이 회복해야 할 품격의 증표다.



ㅡ 평론가 김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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