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ㅡ 시인 주광일

김왕식















시인 주광일





세찬 비바람 불다가
거짓말처럼 별빛 보이고
다시 폭우 내리던 밤
나는 어딘가 아득한 곳에서
꿈을 꾸었네
꿈속에서 나는 거침없이
깊고 조용한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네
강물과 함께 나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계곡 속을
무성의 흑백영화처럼
흘러갔네
강물은 흘러 흘러 이윽고 나도 어둠이
되려던 순간
나는 그만 새벽 종소리에
단잠을 깨고 말았네
빛은 절망뿐인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었네









절망 속에 피어나는 빛의 미학
― 주광일 시인의 내면 서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둠은 종종 현실보다 더 진실하다. 인간은 밝은 날보다 캄캄한 밤에서 자기 존재를 더 깊이 마주하게 된다. 주광일 시인의 시 「빛」은 바로 이 어둠 속을 걸어간 한 존재의 내면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그것은 시인의 삶과 철학이 투영된 절제된 서사이자, 끝내 ‘빛’이라는 존재론적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조용한 선언이다.

시의 초입은 격동하는 세계다. ‘세찬 비바람’과 ‘폭우’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고통과 시련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거짓말처럼 별빛 보이고’라는 구절은 시인의 시선을 드러낸다. 그는 절망 속에서도 빛을 발견하려는 본능적 감각을 지녔다. 이 빛은 단지 외적인 광명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숨어 있던 희망의 조각이며, 그것은 시인의 가치철학이기도 하다. ― '희망은 늘 가장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는 인식 말이다.

이후의 시상 전개는 더욱 철학적이다. 시인은 ‘깊고 조용한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 장면은 단순한 꿈의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 성찰의 여정이며, 자아를 향한 침잠(沈潛)의 의지다. 강물은 생명이며 동시에 세월이고, 때론 망각이다. 그 강물과 함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계곡 속’으로 흘러가는 모습은, 자신을 세속적 시선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존재의 단독자적 선언이다. 세상은 그를 몰라도 좋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흘러간다.

이 시의 절정은 ‘이윽고 나도 어둠이 되려던 순간’이다. 어둠이 되어가는 존재, 그것은 죽음이거나 소멸이며, 혹은 자아의 완전한 침잠이다. 그러나 시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새벽 종소리’는 이 시의 전환점이자, 작가의 미학이 작동하는 지점이다. 종소리는 각성이고, 초월이며, 이승과 저승, 현실과 꿈을 가르는 존재의 울림이다. 그 소리에 깨어난다는 것은, 다시 삶을 향해 눈을 뜨는 행위이다. 이는 시인이 평생 추구해 온 삶의 가치, 즉 고통을 통과해야만 희망에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의 구현이다.

마지막 구절 “빛은 절망뿐인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었네”는 시 전체의 핵심이다. 주광일 시인은 빛을 무조건적 긍정이나 환희로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빛조차 절망의 골짜기를 지나야 비로소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것은 삶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며, 오직 시인처럼 어둠을 감내한 자만이 말할 수 있는 시적 진실이다.

주광일 시인의 시는 단지 형상화된 언어의 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고요히 가라앉은 존재론적 체험의 기록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사색의 맨얼굴이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빛은 어디에 숨어 있었는가.”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처럼 그의 시는 말보다 깊은 침묵, 빛보다 선명한 어둠으로, 한 사람의 진실한 고백이자 모든 이의 구원을 향한 초대장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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