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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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일 시인 근영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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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품격, 빛의 사람에게 바치는 글
― 주광일 시인을 섬기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세상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사람이 있다. 높이보다는 깊이로, 권위보다는 온기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이가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났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 삶의 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개가 숙여지는 사람. 시인이자 법조인이며, 무엇보다 한 사람의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오신 주광일 시인이다.
그는 단지 법과 정의의 세계에서 한평생을 곧게 걸어온 이가 아니다. 서울고검장, 고충처리위원장이라는 무게 있는 자리에서도 늘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을 지켜내며, 청렴과 곧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대하신 분이다. 그러나 그 명망과 직책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건, 그가 지닌 문학적 심성이다.
주광일 시인은 이미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한국의 석학이자 대문호였던 이어령 선생에게 ‘시인’이라 불리며 총애를 받았던 문학소년이었다. 그는 이어령 선생으로부터 “문학 귀재”라는 찬사를 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문학적 천명을 품은 이였다. 서울법대에 진학해서도 그 문학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고, 법학의 길 위에서도 그는 서울법대 문학 활동의 중심에서 시와 산문의 아름다움을 일구었다.
공직의 길을 걷는 동안에도 그의 펜은 멈춘 적이 없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그는 기록하고 사유하며,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단지 지금의 시인이 아니라,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의 삶을 문학으로 살아온 ‘원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그를 더욱 깊이 섬기게 된 이유는, 그가 자신의 문학성과 명망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더 낮은 자리에서 사람을 품는 분이기 때문이다. 작년, 내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채 문우들과의 행사를 함께했을 때, 주 시인은 말없이 내 곁에 다가와 함께 숙소를 정하고 내 이부자리를 깔고, 짐을 들어주며, 불편할까 염려해 먼저 움직이셨다. 그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격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순결한 헌신이었다.
그가 살아온 서울 고검장과 고충처리위원장이라는 직함, 모두를 벗어던지고, 나이 차가 열여섯이나 나는 후배 문우를 위해 조용히 섬기셨다. 그분은 나에게 단지 선배 시인을 넘어서, 부모와도 같은 존재요, 스승 이상으로 나를 일깨운 분이다.
나는 그를 섬긴다. 그분이 나를 보살핀 그 시간, 나는 인간의 품격이란 무엇인지 절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주광일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삶 전체가 한 편의 시가 된 분이라는 것을.
주광일 시인님, 당신 앞에 오늘도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빛과 사랑, 그리고 묵묵한 품격이 제 삶에도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그 삶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등불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당신이라는 시를, 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2025, 5, 15
ㅡ 청람 김왕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