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
붙잡음 조각
시인 이준서
1.
가끔 찾아오는 많은 생각들
산철쭉 주위를 빙빙 도는 호박벌을
너는 귀엽다고 했고,
나는 그런 너를 귀엽다고 했다
이상하리만치 소진된 애정
나는 너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네 마음으로부터
도망가길 택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호박벌을 보며 귀여움을 느끼니
그저 과거의 유산일까
내가 변한 걸까
2.
서랍 위 먼지더미처럼
마냥 깨끗한 감정만은 아니기에
좋아하는 이를 붙잡음에
따라오는 염원들
그 사람이 아니면 미치겠어요.
제발 한 번만 절 바라봐주세요.
제가 무엇을 고치면 될까요
염원 개수만큼 묵주알을 꿰어
조용히 기도 드려면
붙잡을 수 있는지
■
붙잡음의 역설과 감정의 불확정성에 대한 정묘한 탐색
― 이준서 시인의 「붙잡음 조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준서의 시 「붙잡음 조각」은 감정의 잔존과 변화, 애정의 소진과 잔광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청년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두 편의 내면 기록이다. 물리학을 전공하는 이과적 사유를 가진 시인이면서 동시에 예민한 감성의 필력을 지닌 그는, 이미 “시인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자로서의 자각과 실천을 언어로 증명해내고 있다.
1연에서는 ‘산철쭉’과 ‘호박벌’이라는 계절성과 생물적 구체성을 통해 기억의 단서를 불러오고, 그로부터 ‘너’와 ‘나’의 거리, 애정의 온도차를 미묘하게 진술한다. “나는 네 마음으로부터 도망가길 택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은 시적 화자의 도피가 감정의 끝이 아니라, 애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선택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내면의 역동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자기 관찰의 언어로 구현된다. 물리학이 관찰과 측정의 학문이라면, 이준서의 시 역시 감정의 움직임을 질량과 방향 없이 흐르는 ‘불확정성의 언어’로 포착하고 있다.
2연은 보다 절실하고 진폭이 큰 내면의 언어로 넘어간다. “서랍 위 먼지더미”는 감정의 현실적 흔적과 시간의 퇴적을 상징하며, 연인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기도의 염원은 절절한 청춘의 목소리로 울린다. “염원 개수만큼 묵주알을 꿰어 / 조용히 기도 드려면 / 붙잡을 수 있는지”라는 문장은 신앙과 사랑, 구원의 경계를 넘나드는 절실한 존재 확인의 문법이다. 이는 감정의 연소 과정이 아닌, 붙잡고자 함의 숙명적 허무를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이준서의 시는 자전적 정직함과 서정의 절제, 그리고 삶을 관통하는 통찰의 씨앗을 고루 품고 있다. 시적 장식보다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문체는 외려 더 큰 여운을 남기며, 물리학도로서의 분석적 자의식과 시인으로서의 감성적 직관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더 이상 ‘시인을 꿈꾸는 학생’이 아니다. 이준서는 이미 감정의 실체를 가감 없이 꿰뚫고, 언어로 응축하는 능력을 지닌 시인이다. 무엇보다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 슬픈 인식이, 그의 시를 풋풋함을 넘은 깊이의 언어로 이끌고 있다. 이준서의 다음 시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