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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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를 닦는 사람, 별을 쓸어 담은 사람
청람 김왕식
창수는 아침이 싫었다.
새벽이면 아버지가 빗자루를 들고 골목을 나서는 소리에 눈을 떴다. 벽 너머로 들리는 빗자루 소리, 바닥을 긁는 거친 마찰음은 어느새 그의 부끄러움이 되었다.
친구들이 “네 아버지, 청소부래” 하고 속삭이는 순간부터 창수는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 먼지를 치우는 손보다, 먼지를 밟고 걷는 구두가 더 근사해 보였다.
창수는 몰랐다.
그 신새벽의 골목에서, 아버지는 매일 새 세상을 닦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흙먼지를 쓸며 아버지는 콧노래를 불렀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이 오늘 하루 불편 없이 잘 다녀오기를.’ 작은 바람이 콧노래에 실려 골목을 맴돌았다.
사람들은 그 길을 걸었다.
누군가는 출근길에 커피를 마셨고, 누군가는 퇴근길에 피로를 털었다. 아무도 그 길이 얼마나 조용히 정돈되어 있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길 위의 쓰레기와 무관심을 쓸어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고요한 성취감.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히 하루를 맞이했다. 세상의 어둠이 걷히기 전, 자신의 어둠부터 걷어낸 사람이었다. 그에게 빗자루는 신분이 아니라, 사명이었다. 도시의 땀방울을 씻어내는 마지막 손길이었고, 타인의 하루를 준비하는 첫걸음이었다.
창수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빛나는 구두를 신는 사람이 되었지만, 삶의 의미가 발끝에서 올라오지 않음을 느낀다.
비로소 기억난다. 먼지를 털고 나서야 빛나는 아침. 사람들이 걷는 그 길 위에, 자신을 지운 누군가의 흔적. 창수는 이제 안다. 아버지는 평생 가슴 뛰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는 별을 줍지 않았다. 대신 그 별이 내려앉을 자리를 매일같이 닦아냈다. 누군가의 눈에 띄진 않아도, 누군가의 발자국 뒤에 남겨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던 사람. 그 길을 걷는 모두가 반듯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새벽마다 가장 먼저 빛을 깨운 사람.
삶의 위대함은 때때로 아주 작고 조용한 이름으로 남는다. 창수 아버지, 그는 청소부가 아니라 길 위에 별을 그리던 시인이었다.
ㅡ 청람 김왕식